나는 오늘날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며 가끔 "사냥이 시작되었네, 왓슨!"이라고 하는 그 낯익은 대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시달린다. 그 소리를 듣고 나면 믿음직한 리볼버를 손에 쥐고 어두컴컴한 베이커 가를 휘감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 일이 두 번 다시 찾아올 리 없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따름이다. 모든 인간의 운명이라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어둠 너머에서 홈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면 솔직히 나도 그의 곁으로 건너가고 싶다. 해묵은 상처가 나를 끝까지 괴롭히는 가운데 끔찍하고 무의미한 전쟁이 이 나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제는 더 이상 납득하지 못하겠다. -15쪽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난이 아이들에게서 앗아 가는 첫 번째 값진 보물은 어린 시절이다. -78~9쪽
내가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처믕 만난 것은 그가 사악한 범죄자 부부와 얽혀 버린 이웃의 희랍어 통역관과 관련해서 도움을 청했을 때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홈즈에게 일곱 살 많은 형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 할 수 있건만 나와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어린 시절이나 부모님, 고향 혹은 베이커 가 이전의 생활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으니 생각해 보면 희한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천성이 그랬다. 자기 생일을 기념한 적도 없어서 나도 부고를 보고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알았을 정도다. 선대가 지방의 대지주였고 친척 하나가 상당히 유명한 화가라는 이야기를 한 번 한 적 있었지만, 보통은 식구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지내는 쪽을 더 좋아했다. 자기 같은 천재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세계 무대에 등장한다는 걸까. -165~6쪽
그는 걱정스러워하는 나를 남겨 둔 채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고는 점심 무렵에 돌아왔지만 끼니를 걸렀다. 짜릿한 수사에 돌입했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전에도 자주 접했던 모습이다. 그를 보면 가슴 높이에서 풍기는 냄새를 쫓아 달리는 사냥개가 생각났다. 사냥개가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듯 그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인 먹을거리, 물, 수면조차 생략할 수 있을 만큼 사건에 몰입하기 때문이었다. -176~7쪽
작가로서의 인생이 막바지에 이른 이제 와 돌이켜보면 신기한 것이, 나는 악당의 정체가 드러나거나 체포되는 것으로 모든 연대기의 끝을 장식했고, 궁금해하는 독자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 이후 그들의 운명에 지면을 할애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마치 범죄가 그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사건이 해결되면 그들이 더 이상 살아 숨쉬는 심장과 낙심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이 회전문을 지나 이 음침한 복도를 걸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두렵고 괴로웠을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거나 구원의 기도를 드린 사람이 있었을지, 끝까지 싸운 사람이 있었을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내이야기와 별개의 문제였다. (중략) 나는 요즘 사람들이 탐정 소설이라고 부르는 작품을 썼다. 어쩌다 보니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가장 위대한 탐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와 대결을 펼친 상대 덕분에 위대한 탐정이 될 수 있었을 것일 텐데, 내가 그들을 너무 홀대했던 것이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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