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죄악, 탐식 - 죄의 근원이냐 미식의 문명화냐
플로랑 켈리에 지음, 박나리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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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신학자 장 드 제르송은, 탐식보다 더 중대한 죄를 지을 수 있으니 과도한 금식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더 중대한 죄란 첫째로 지친 몸이 과민해지면서 생겨나는 분노이며, 둘째로 자신에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가하는 오만이다. 그러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도덕론자와 교육학자들은 절제의 개념을 강조했다. 신체활동에 필요한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너무 많이 먹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죄를 저지르게 된다. 『신학대전』(1271~1272)의 저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먹고 마시고 싶은 욕망이나 미각의 쾌락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는 자연스러우며 신이 바라신 것이기에 전혀 나쁘지 않다고 언급했으나, 인간을 한낱 금수로 만들어버리는 도를 벗어난 식탐은 역시 지탄했다. 지각 있는 식욕이란 결국 절제와 균형 그리고 사회 예법을 준수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한 사회 예법이란 인체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면서 초대한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사람들 사이에 필수적인 교류를 말한다. -33~4쪽

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에 따르면 '하나뿐인 진정한 이상향'인 코케뉴는 중세에 만들어졌지만, 그 이미지는 성경과 고대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가나안 땅, 신이 유대민족에게 내린 약속의 땅 이외에도 성경에서 가장 많이 참조한 부분은 바로 에덴동산이다. 지상낙원에 있는 것처럼 코케뉴의 인간은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역시 배고픔 자체도 낯선 개념이다. 더군다나 음식을 얻기 위해 일할 필요는 더욱 없다. -46쪽

그러나 과연 미각적 쾌락에 대해서 진지하게 서술하는 일이 가능할까? 음식은 저속한 소재로 여겨져 대부분의 고급 문학 장르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몰리에르의 희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음식을 먹지만, 코르네이유의 비극에서는 먹지 않는다. 더욱이 라신의 희곡 중에서는 유일하게 《소송인》이라는 작품에서만 등장인물들이 먹고 마신다. 근세 프랑스 문학에서는 음식은 콩트나 희극소설, 우스꽝스럽거나 저속하고 익살스러운 시, 음란소설 같은 마이너 장르에만 등장했다. 서사시, 비극시, 서정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소재였던 셈이다. -147쪽

음식을 묘사의 대상으로 삼았던 서양 회화는 미각적 쾌락을 언급하는 데 있어 요리책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서양에서 음식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정물화나 풍속화의 묘사 소재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오랫동안 예술사학자들은 풍부한 지식을 동원하여 회화 작품에 묘사된 빵, 포도주, 과일, 채소, 계란, 생선, 고기, 과자 등이 지닌 도덕적, 종교적 의미를 논했다. 빵이나 포도주의 존재에서 그리스도적 상징을 읽어냈으며 벌레 먹은 과일에서 허영의 상징을 발견했다. 그런데 과연 그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면 이 역시도 요리책에 등장하는 영양학적 담론처럼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여주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을까? 벗은 몸을 그리기 위해 신화를 회화의 소재로 채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149~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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