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구판절판


1999년 봄부터 지금까지 가장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한 일은 100여 년 전과 식민지 시대의 신문과 잡지를 보고 또 보는 일이었다. 옛날 신문과 잡지 속에서 나는 문학을, 역사를, 사회를, 문화를, 일상을 본다. 옜날 자료들을 볼 때면 한없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재미있는 기사와 마주쳤을 때는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뜻일 게다. 그러니 그동안 옛날 신문과 잡지를 보고 뒹굴면서 몇 권의 책을 냈을 게다. 만약 옛날 신문과 잡지를 보고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을 '공부'라 부를 수 있다면, 또한 '공부'가 '직업'이 될 수 있다면, 내 마지막 직업은 공부이고 싶다. 시간강사도, 연구원도, 교수도 아닌 '공부'가 직업이 될 수는 있는 것일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욕심을 부리자면 '4대 보험'도 적용됐으면 더 좋겠다. -9쪽

직업의 변화야말로 근대성의 일부분이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욕망의 배치와 경제적 메커니즘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직업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좀 더 세련되고 모던해진 직업으로 변화할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 것이며, 무엇이 새롭게 생겨났을까. -15쪽

너희들보다 좀 더 민중의 친우란 말이다. 너희들 앞에서 내가 지사라고 떠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만 이렇게 남을 잡아먹고 더구나 동족끼리 피를 빨아먹는, 역사의 피를 받은 못된 버릇으로 남을 죽이려고 악을 쓰는 너희들 자신의 피부터 시험해보아라. 그 속에 누구에게든지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피가 몇 방울이나 나겠느냐. 왜 팔을 걷고 나와서 작품을 만들지 못하느냐. (……) 우리들은 우리들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는 많은 동지들에게, 귀엽고 그리운 형제들에게 얼른 보이려고 제작한다. 그네들을 낙심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무식한 광견들아, 짖으려거든 짖어라. 우리는 누구보다도 조선 영화계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민중의 친우이다. /이필우, 「영화계를 논하는 망상배들에게-제작자로서의 일언」, 『중외일보』, 1930년 3월 23~24일.-61쪽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소설이 이를테면 제3자의 운명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제3자의 운명이, 그 운명을 불태우는 불꽃을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의 운명으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따뜻함을 우리들에게 안겨주기 때문이다. 독자가 소설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한기에 떨고 있는 삶을, 그가 읽고 있는 죽음을 통해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인 것이다. /발터 벤야민,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1999.-91쪽

낭독의 특징은 파편화되어 있는 개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묵독이 고립된 개인을 양산한다면 낭독은 공동체적 개인을 길어낸다. -107쪽

세헤라자데는 1001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해갔다. 세헤라자데에게 이야기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다르게 말하면 죽음을 지속적으로 유예시키는 무기였다. 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두려운 공포인 죽음을 망각하게 하고, 죽음을 유예시키고, 죽음과 대항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죽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살아보고, 상상조차 못해본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112쪽

자연의 리듬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낳은 근대의 직업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등에 업고 등장한 모든 직업은 연금술사의 근대적 버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장장이나 연금술사가 활동했던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는 납을 금으로 만들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가 선택한 직업은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라기보다는 '교환가치'로서의 직업인 경우가 흔하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업은 그 사회의 욕망의 배치가 바뀜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 개인의 욕망에 따라 어떤 직업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그 사회의 주된 욕망이 무엇인가에 따라 개인들이 선택하는 직업의 선호도는 달라진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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