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니가 보고 싶어 tam, 난다의 탐나는 이야기 1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를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은 모르는, 글이라고는 시덥잖은 리뷰 정도만 남기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풀어가는 사람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작가가 나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을 때면 더 그랬다. '얜 대체 뭘 읽고 컸지' 하는 생각에 슬쩍 질투가 나는 것이다. 동갑내기인 <덧니가 보고 싶어>의 작가 정세랑도 그랬다. 재화와 용기의 희한한 러브스토리에 낄낄거리다가도 괜시리 질투가 났던 책, <덧니가 보고 싶어>다.

 

  <덧니가 보고 싶어>는 장르소설가인 재화와 그의 전 남자친구인 용기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재화에게 용기는 "평생을 함께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지만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를 함께하고 싶은 남자"였다. 용기에게 재화는 "불법 선팅 차량처럼" "막이 하나 씌워져 있는 것 같"은,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덧니만이 이 세계에 속하는 것"같은 여자였다. 작가와 경비업체 직원이라는 직업상의 이미지만큼 갭이 큰 두 사람. 중간에 연결된 인물이 있지만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희한하게도 '텍스트'로 연결이 된다. 자신의 소설 속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용기를 모델로 한 남자 주인공을 아홉 번 죽인 재화. 단행본 작업차 재화가 작품을 퇴고를 시작하자 뜬금없이 용기의 몸에 그가 소설 속에서 죽은 방식이 문신처럼 새겨진다. 어긋난 좌표를 가진 두 사람은 재화의 소설이라는 보이지 않는 매개체를 통해 다시 조금씩 좌표가 수정된다. 이 두 사람의 좌표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런지. 

 

  <덧니가 보고 싶어>는 다층 구성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릴린 먼로를 닮은 소녀 로봇도 나오고 처녀 공물을 요구하는 용도 나오고, 양치기를 사랑하는 알파카 양도 나오고, 워프를 못 하게 된 우주 항해사도 나오고, 얼음에 갇힌 여왕도 나온다. 판형도 아담하고 250페이지 남짓한 가벼운 장편소설인 <덧니가 보고 싶어> 속에는 크게 열 편(아홉 편의 삽화와 용기와 재화의 이야기)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산만하지 않다. 오히려 각각의 이야기와 큰 줄기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웃어 넘길 수 있어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소설을 읽으며 가끔 '누가 현실에서 이런 대사를 쳐'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문체가 책을 읽는 독자와 이야기 속의 인물을 투명한 막으로 막아놓는 것이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다. 이야기를 통해 감정의 변화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리얼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외국소설에 더 몰입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외국소설은 어차피 '내 주변의 이야기'라는 가정을 내려놓고 시작할 수 있으니...) 그런데 <덧니를 보고 싶어>를 읽으며 한국소설에도 이렇게 생생한 목소리로 발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줄 아는(그것도 지루하지 않게!) 작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문학이니 장르문학이니 하는 경계를 지을 필요도 없이, 이 책은 어쨌거나 사랑스럽다. 용기와 재화 두 주인공은 물론이거니와 터프한 선이 언니도, 서슴없이 직구를 던지는 용기의 여자친구도, 재화의 지원군인 편집자 조선배도, 심지어는 재화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매력적이다. 이야기 속에 있지만 마치 독자 곁에 있는 것 같이 살아서 숨쉬는 등장인물들. 활어처럼 펄떡펄떡 뛰는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지 싶었다. 첫 작가의 말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간절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정세랑. 그의 말처럼 앞으로의 행보가 세기를 뛰어넘는 '농담'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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