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아이들 2 (양장)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절판


아니지, 부잣집 꼬먀야, 제3의 요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세상에는 재산-가난, 부자-빈자, 우익-좌익이 있을 뿐이야. 온 세상이 나의 적이란 말이야! 세상은 관념이 아니란다, 부잣집 꼬마야. 세상은 몽상이나 몽상가들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세상이 뭐냐 하면, 이 코찔찔이 녀석아, 물질이야. 재물과 그 재물을 만드는 놈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비를라와 타타처럼 막강한 가문들만 봐도 알잖아. 그런 놈들은 재물을 만들어내지. 나라를 꾸려가는 것도 재물을 얻기 위해서야.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재물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가 원조물자를 보내오지만 여전히 5억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지. 재물을 갖고 나서야 꿈을 꿀 여유도 생기는 법이야. 재물이 없으면 그저 싸워야 할 뿐이라고. -43쪽

"그렇지만…… 자유의지는…… 희망은…… '마하트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인류의 위대한 영혼은…… 게다가 시도 있고 예술도 있고……" 그러자 시바가 승리를 움켜쥐면서: "봤지?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너무 오래 끓인 밥처럼 곤죽이 돼서 흐물흐물하지. 할망구처럼 감상적이라고. 그렇게 시시껄렁한 것들을 어디다 쓰겠냐? 다들 먹고 살기도 바쁜 판국에. 지랄 염병, 이 오이코 녀석아, 난 이제 너희 협회라면 신물이 난다. 재물과는 아무 상관도 없잖냐."-44쪽

아이들은 빈 그릇과 같아서 어른들이 그 속에 독을 주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파멸시킨 것은 어른들의 독이었다. -45쪽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자서전에서도 저자가 독자를 설득하여 무엇을 믿게 만들었느냐가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인데……-75쪽

자정은 수많은 아이들을 낳았다. 독립의 자식들 중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도 있다. 폭력, 부패, 빈곤, 장군들, 혼돈, 탐욕, 후추통…… 나는 유배된 다음에야 비로소 자정의 아이들이 내가-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18쪽

"아, 그 웃기는 전쟁이 좋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여버리고 허섭스레기만 남겨놨군요!"-225쪽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는 정당성-부당성을 발견했다. 부당성은 양파 냄새와 비슷했다. 톡 쏘는 강렬한 냄새 때문에 눈물이 절로 났다. -276쪽

"대장, 선거라는 건 정말 한심한 짓이야. 선거철만 되면 꼭 나쁜 일이 생기거든. 그리고 국민들이 어릿광대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이야."-336쪽

관광객 중 하나가 나에게 인도는 놀라운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멋진 나라라고 말했다. 다만 끼니때마다 인도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더욱더 완벽할 거라고 했다. -366쪽

나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전혀 다른 결말을 보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쪼가리와 파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까마득한 옛날에 말했듯이 주어진 몇 개의 실마리를 가지고 빈틈을 메워가는 것이 요령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우리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내용을 암시하는 머리글자가 적힌 서류철을 한 번 본 기억을 바탕으로, 그리고 약탈당한 내 기억창고에 아직도-바닷가에 나뒹구는 병 조각처럼-남아 있는 과거의 파편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야겠는데…… 마술촌에서는 기억의 쪼가리 같은 신문지들이 한밤의 조용한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니곤 했다. -387~8쪽

정치라는 것은, 아이들아: 태평성대에도 언제나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멀리했어야 옳았다. 나도 존재이유 따위는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거대하고 거시적인 활동보다 차라리 사생활이-즉 개개인의 보잘것없는 인생이-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젠 어쩔 수 없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참는 수밖에 없다. -404쪽

절제술(어원은 아마도 그리스어일 것이다): 의학은 이 말에 수많은 접두사를 붙였다. 맹장절제술 편도선절제술 유방절제술 난관절제술 정관절제술 고환절제술 자궁절제술. 살림은 이 수술 목록에 또 하나의 용어를 거저 무료 공짜로 기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비록 의학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역사학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희망절제술: 희망을 적축하는 수술. -408쪽

"우리 결혼해요." 그녀가 그렇게 청혼을 했고, 그 말은 마치 카발라의 주문처럼, 아브라카다브라처럼 내 마음을 마구 설레게 하면서 운명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말은 봄베이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한낱 예식 따위로 찌익 쫘악 우지끈을 물리칠 수는 없다. 그리고 낙관주의는 질병이다. -423쪽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자네는 빈둥거리는 것 말고는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더군.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저승사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셈이라는 말을 명심하라고. -427쪽

언젠가는 세상이 이 '역사피클'을 맛보는 날이 올 것이다. 맛이 너무 강해서 어떤 사람들의 입맛에는 안 맞을지도 모른다. 냄새가 너무 독해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이 피클 속에 진실의 참맛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 피클들은 결국 사랑의 산물이라고. -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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