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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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탈리아를 관광하는 방법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로마, 소렌토, 피렌체, 베네치아 노선이 그것이다. 노선이 간혹 밀라노를 들르기도 하는데, 이건 대개 쇼핑을 위한 것이니 밀라노를 봤다고 하기에도 면구스러운 일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주나 강진, 통영 같은 멋진 동네가 이탈리아 안에는 물론 수없이 많다. 그런 동네를 왜 가지 않느냐고 한국인 관광객에게 물으면 다양한 대답이 쏟아지는데, 앞서의 소매치기 문제부터 영어가 안 될 테니까 불편해서, 교통편을 몰라서, 심지어 한국인 민박집이 없어서까지 나온다. -14~5쪽

그래서 이탈리아는 가볼 만한 나라다. 혹시 이탈리아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 "절대 가볼 만한 나라가 아니야"라고 반박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적어도 당신은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라고 말하겠다. 이곳에는 무선 인터넷은 안 되지만 버스 기사의 신경질도, 지하철의 성추행도, 아무 데서나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내 자리에 잽싸게 먼저 앉아버리는 아줌마도, 무표정한 구멍가게 아저씨도, 마이너스 연말정산도, 비싸게 부르는 치과 의사도, 인터넷 악플도, 여름 휴가 후 어느 날 나보다 훨씬 예뻐져서 나타나는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29~30쪽

그런데 이탈리아의 맛도 잘못 먹으면 이게 사람을 심하게 실망시킨다. 원래 음식이란 게 그런 면이 있다. 10만원짜리 핸드백이나 옷 잘못 산 후회는 10분이면 잊는다. 그런데 1만원짜리 음식이 제 맘에 안 들면 잠들 때까지 분하고 억울하다. 옷이 맘에 안 든다고 매장에 가서 항의하는 사람들 태도가 어떤가. 매우 점잖다. 이거, 바꿔줄 수 있냐고 주섬주섬 말한다. 그런데 5천원짜리 백반이 맘에 안 들면 주인을 잡을 듯이 눈을 부라리는 게 사람의 속성이다. 제 입에 들어가는 건 보통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도 분한 것이다. 이건 한국이나 서양이나 다 마찬가지다. -34~35쪽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건 순전히 먹는 여행일 수도 있다. 이탈리아 식당의 메뉴는 계절별로 변해서 식도락가들을 즐겁게 한다. 지방별로 요리가 다 색다르고(돈 많은 서울내기들의 입맛에 맞추기 바쁜 한국 지방 음식을 생각해보라) 식당의 개성이 뚜렷하다.-45쪽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 데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3박 4일짜리 여행에 종갓집 여행용 김치 세트와 볶은 고추장(그것도 모자라 비행기에서 승무원에서 부탁해서 몇 개쯤 더 챙겨두기도 하지), 양반김과 햇반, 컵라면까지 챙겨가는 사람들은 제외하고서 말이다. 다 좋은데 제발 호텔 방에서 카펫에 김칫국물은 쏟지 말자. 내가 아는 한 이탈리아 여관 주인은 한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카펫 세탁비로 수백 유로를 더이상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62쪽

"ㅇㅇ가 아름다운 건 그것이 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ㅇㅇ에 무엇이든 대입해보시길 바란다. 꽤 그럴듯한 금언이 될 테니까. 김치도 식탁에 있을 때 먹음직스럽다. -93쪽

한국에서 양식당 일을 하다보면, 묘한 한국인의 선입견에 상당히 고전할 각오를 해야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식당이라면 푸아그라 요리 정도는 당연히 팔고 있을 거라고 믿는 손님들 때문이다. '푸아그라=고급 식당'의 등식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요리사란 결국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고, 자신이 만드는 요리 재료가 산지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고기라면 어떤 나라에서 뭘 먹고 자라는지, 항생제 주사 따위는 맞지 않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걸 사람들은 알고 싶어하고 알 의무가 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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