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칠세부동석, 남녀유별, 남녀상열지사 등 조선시대의 남녀관계를 지칭하는 표현들은 어째 남녀가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 하고 윽박지르는 듯합니다. 이런 우리의 편견(?)에 대해 이종묵 선생님은 그만큼 그 당시 자유연애가 적지 않았음의 반증이라고 이야기하며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아무리 금기가 많은 시대라 해도 현실적으로 청춘 남녀의 사랑을 막기란 힘들었습니다. 암만 안 된다 안 된다 해도 기회만 생기면 불꽃이 번쩍 하는 것이 혈기 왕성한 청춘 남녀 아니겠습니까?ㅎㅎ 마음 가는 대로 거처를 옮겨 아내를 다섯 명이나 둔 박의훤 같은 평민은 물론이고 과부와 사사로이 혼인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게 된 이지 같은 양반까지, 제도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았지만 '남녀상열'하여 '야합'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혼인하는 '불고이취'는 성행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정욕에 의해 남녀가 쉽게 만났다 헤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적인 절차와 규정이 생겨난 셈이라고 합니다. 이런 제도적인 측면을 짚으며 시작하지만 <부부>는 제도보다는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근거리는 만남부터, 알콩달콩 닭살 돋는 사랑을 나누다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그 도타운 정을 옛글을 통해 읽어갑니다. 

 


  "오늘밤 촛불 켜지 않았더니/ 낭군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향긋한 숨소리만 듣다가/ 아침에 거울 보고 하는 말/ '어찌하여 뺨에 바른 연지가/ 낭군 얼굴에 가득 묻었나요?'" - 이안중의 「달거리 노래」 중 12월

  자네가 항상 나에게 이르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나하고 자식하고 뉘 기걸하여 어찌하여 살라 하고 다 던지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던고? 매양 자네에게 내 이르되 한데 누워 “이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사랑하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여 자네에게 이르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고? 자네 여의고 아무리 내 살 방도가 없으니 수이 자네에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으니, 아무리 설운 뜻이 가없으니 이내 속은 어디다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며 살려나 하나이다. 이내 안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이르소. - 이응태 아내의 편지 일부(269~270쪽)

 


  이렇게 때로는 은은하게 밤 사이 신혼부부의 침방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는가 하면, 때로는 절절하게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부부의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와닿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챕터는 '내조'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분명 글을 남긴 사람은 진지했을 텐데도 어쩐지 웃음이 났다고 할까요. 소위 내조를 잘하는 아내를 현모양처라 일컫는데, 옛 사람들이 생각한 내조가 단순히 자식 교육을 잘하고 살림을 잘 꾸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바른길로 이끄는 적극적인 내조였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중 가히 조선시대 내조의 여왕이라 부를 만한 송덕봉의 글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합니다. 유희춘은 어느 날 아내 송덕봉에게 자신이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서너 달이나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노라 자랑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조선시대 아내라면 남편의 이런 편지를 읽고 어쩐지 인고하고 순종할 것 같지만 송덕봉은 예상을 뒤엎고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삼가 편지를 보니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것을 두고 갚기 어려운 은혜라고 스스로 자랑하셨는데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다만 듣건대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본래 성현의 밝은 가르침이지 어찌 아녀자를 위하여 힘쓸 일이겠습니까? 마음이 이미 정해져 물욕에 가려지지 않으면 절로 잡념이 없어지는 것이니, 어찌 규중 아녀자에게 보은을 바라겠습니까? 서너 달 여자 없이 홀로 지낸 것 가지고 고결하다고 하며 덕을 베푼 생색을 낸다면 당신도 분명 담담하여 사심이 없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해서 밖으로 화려한 유혹을 끊어버리고 안으로 삿된 생각이 없다면 어찌 꼭 편지를 보내어 공치사를 한 뒤에야 남들이 알아주겠습니까? 나를 알아주는 벗이 가까이 있고, 권속과 노비 들이 아래에 지키고서 눈으로 살펴보고 있으니, 공론이 저절로 퍼질 것입니다. 굳이 애써 편지를 보낼 것도 없겠지요. 이런 것을 보면 당신은 아마 겉으로 인의를 베풀고는 얼른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합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니 의심스러움이 한량없습니다. (후략) 


 

  올해 초, 고틀립 할아버지의 <가족의 목소리> 편집중에 우연찮게 엇비슷한 시기에 이종묵 선생님의 <부부> 원고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목소리>는 가족 안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고, <부부>는 옛 부부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라 분위기도, 성격도 달랐지만 두 책을 만들며 시대와 국경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답니다. 만남부터 죽음으로 인한 이별까지 부부의 생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부간의 일을 치밀하게 읽어가는 <부부>. 이 책에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의 이야기도, 이제는 파기해야 할 봉건적 관념을 대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옛 선비들의 부부에 대한 인식이 남편으로서, 부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져줍니다.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찡하게 옛 부부의 삶을 통해 진정한 부부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 도타운 '정'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쌀쌀한 가을 밤, 이 책을 통해, 부부의 정을 통해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실 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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