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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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 때문일까? 프랑스 소설에서 종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하는 등장인물을 만나곤 한다. 얼마 전에 읽은 공쿠르상 수상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기억을 잃고 자신을 찾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언노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사고로 72시간 동안 코마에 빠진 뒤 깨어난 주인공. 모든 기억을 잃지 않은 듯하지만, 정작 병원 문을 나서고 보니 그의 자리에 자신과 똑같은 추억과 똑같은 기억을 가진 남자가 존재하고 있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주는 사람도, 신분증 같은 서류상의 증거물도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 위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출간된 『언노운』. 영화를 먼저볼까, 원작 소설을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반전을 알고 봐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에 이끌려 원작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와 원작 모두를 보고 난 뒤의 결론은 영화와 원작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는 것. 일단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코마에 빠진 뒤 깨어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는 같지만, 영화와 원작을 가르는 요소는 '액션'과 '음모'다. 소설에서의 반전은 문자 그대로 반전으로 존재한다. 주인공 마틴 해리스의 자기 증명과도 같은 독백과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식물학적 지식에 대한 기억이 주를 차지해 영화보다는 훨씬 주인공 내면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느끼는 혼란, 자신을 증명할 것이 없어 느끼는 절망이 영화의 원작인 『언노운』 속에는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원작에는 거의 없었던 액션이 끼어든다. "사라진 72시간 액션을 재구성하라"라는 영화 포스터 속의 카피처럼 영화 속 마틴 해리스는 소설 속 이미지보다는 강하다. 자신의 기억에 없는 행동, 예를 들면 피아노 연주 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소설 속 마틴 해리스와 달리, 영화 속에서는 누군가 그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줄 때까지는 그는 각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에는 차이가 있어도, 액션과 음모가 가미되어 좀더 자극적이고, 좀더 화려하게 단장했다 해도 기본적으로 『언노운』이 제시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고, 자신을 증명할 어떤 방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인지, 무엇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전 세계 동시 개봉을 택했다는 말처럼 『언노운』의 매력은 반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곳곳에 깔린 복선이 눈에 들어와 더 재미가 더해졌다. 덤으로 원작과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직 영화를 접하지 않은 이라면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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