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아무리 봐도 범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가끔은 답답한 나머지 피해자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발행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살아 있는 시체, 다시 말해 좀비가 나오는 이야기라는 사실에 어딘가 오싹하다거나, 찝찝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표지에 이끌려 구입은 했지만, 그런 근거 없는 판단 때문에 꽤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만' 두고 부채감만 안고 있었다. 그러다 뭐 적당히 읽을 게 없을까 하고 책장을 둘러보다 오랫만에(?) 눈에 들어와 읽고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이 책을 이제사 읽다니! 맙소사!

  일단 독특하게도 이 책은 일본 작가가 쓴 책이지만, 배경 및 주요 등장인물이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주인공인 그린은 반쯤 일본인의 피가 섞인 인물이지만)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속 가족은 장의업을 가업으로 삼고 있는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운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TV 속에서 죽음을 접하고, 매일같이 죽은 사람을 단장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장례식장 경영에 대해 고민을 하며 죽음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여기, 죽었음에도 살아서 움직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그린이다. 펑크족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점점 혈색을 잃어가고 부패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화장으로 감추고, 친족 사이에 벌어지는 죽음의 흔적을 추적하는 그린. 그리고 그 추적 가운데 숱한 살아 있는 시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인가. 

  누가 살아 있는 것인지, 누가 죽은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상황. 이런 혼동스러운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읽어가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천천히 죽음을 향해간다. 매일 수십 개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세포는 점점 줄어가며 그렇게 소멸해가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너무나 당연스레 받아들인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우리가 당연시해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배경 및 설정 자체는 서양의 것이지만, 이 점에서 윤회사상 같은 동양의 죽음관이 슬쩍 드러난다.  

  일본 작가가 쓴 책이지만 미국적인 내용과 미국적인 유머 때문인지 여느 일본 추리소설처럼 술술 넘어가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놀랄만큼 유머러스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얼핏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요소를 작가는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솜씨 좋게 버무려나간다.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 하지만 묘하게 납득해버리고 마는 비논리 속의 논리. 이것이 어쩌면 삶 속의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설정만큼 독특한 이야기. 다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꼼꼼한 이야기 솜씨에 감탄했다. 두뇌 게임을 원하는 정통파 추리소설 독자나 가볍게 술술 읽을 일본 추리소설 애호가에게는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좀비 소설에 대한 편견 없이 한바탕 소동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읽어간다면 분명 어느샌가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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