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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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11쪽

그가 '빅 브라더 타도'라고 썼든 쓰지 않았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가 일기를 계속 써나가든 포기해버리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사상경찰은 그를 똑같이 취급할 것이다. 그는 이미 다른 모든 죄를 포괄하는 본질적인 죄를 범했다. 그가 종이에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것을 '사상죄'라고 물렀다. 사상죄는 영원히 감춰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잠시 동안, 혹은 몇 년간은 어떻게 용케 은폐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조만간 반드시 발각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밤에 일어났다. 체포는 예외 없이 밤에 행해졌다. 잠을 깨우는 갑작스러운 흔듦, 어깨를 휘어잡고 뒤흔드는 우악한 손, 눈에 갖다 대는 번쩍이는 불빛, 침대를 삥 둘러싼 험악한 얼굴들. 대부분의 경우 재판도, 체포 보고서도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밤중에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성명은 호적에서 빠져버리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은 깨끗이 없어진다. 그가 한때 살았었다는 사실도 부인되고 그다음에는 잊히고 만다. 그는 폐기, 멸종되고 만다. 그것을 보통 증발되었다고 말했다.
-28~9쪽

오늘날에는 아이들 거의가 무서운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악랄한 것은 스파이단과 같은 그런 조직체의 힘에 의해 아이들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다루어볼 수 없는 작은 야만인으로 바뀌는 것이며, 더구나 당의 규율에 반발하는 성향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반발은커녕 그들은 당과 당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찬양했다. 군가, 행진, 깃발, 등산, 모의총 훈련과 당의 강령 복창 및 빅 브라더 숭배 따위는 모두 그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놀이였다. 아이들의 잔인성은 모두 외부로 향해서 국가의 적들에게, 외국인과 반역자들에게, 태업을 일삼는 분자들과 사상범들에게 쏠렸다. 서른이 넘은 부모들이 제가 낳은 자식들이 무서워 떠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도청하여 고자질하는 학생-흔히 '소년 영웅'이라는 말을 썼다-이 어떤 위태로운 이야기 대목을 엿듣고는 저희 부모를 사상경찰에 밀고했다는 기사가 <타임스>에 실리지 않는 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35쪽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의 신경 조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든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긴장이 자칫하면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2, 3주 전에 거리에서 지나쳤던 남자가 생각났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남자로, 당원 같았고 서른다섯 내지 마흔쯤 되어 보였으며, 키는 늘씬한 데다 말랐고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불과 몇 미터쯤 떨어져 있었을 때 그 남자의 왼쪽 뺨이 별안간 경련 같은 것으로 일그러졌다. 두 사람이 서로 지나치는 순간에도 다시 그 현상이 일어났다. 카메라 셔터가 찰칵하는 것처럼 빠르게 씰룩거리고 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남자의 습관임이 분명했다. 윈스턴은 당시에, 저 가련한 친구 볼장 다 봤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더구나 무서운 사실은 그런 일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제일 위험한 것은 잠꼬대였다. 그것은 그가 아는 한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83쪽

그는 전에도 여러 번 생각했던 것처럼 자기가 미친 건 아닌지 의아해했다. 어쩌면 정신병자는 그저 소수에 불과할는지도 몰랐다. 옛날에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믿는 것이 미쳤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과거는 바꿀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미친놈 취급을 당했다. 그는 자기 혼자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고, 혼자인 까닭에 미친놈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은 그다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 자신 역시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102쪽

그러나 부의 전반적인 증가가-진정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인데-계급사회를 파괴시킬 위협이 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모든 사람의 약간의 노동력만으로도 먹을 것이 충분하고 욕실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 살고, 승용차와 비행기까지 가질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된다면 불평등의 가장 뚜렷하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형태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일단 부를 모두가 누리게 되면 차별이 없어진다. 사유(私有)와 사치라는 의미의 '부'가 공평히 분배되고, 그 반면 '권력'은 소수 특권 계급이 장악하게 되는 사회를 의심의 여지 없이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는 실질적으로 오래 안정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안정을 향유하게 된다면, 빈곤으로 인해 멍텅구리가 되는 것이 정상적이어야 할 수많은 대중이 유식해지고, 제 나름대로 사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소수의 특권층은 조만간 자신들의 특권적 기능을 빼앗기게 될 것을 깨닫고, 그들을 쓸어 없애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계급사회는 오직 빈곤과 무지를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 -233쪽

상층계급의 목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간계급의 목표는 상층게급의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층계급의 목표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너무나 고달픈 일에 짓눌리므로 하층계급의 특성이란 일상생활 외에는 어떠한 것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것이니까-모든 차별을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 역사를 통해 그 주된 요점이 똑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해 일어난다. 오랜 세월 상층계급은 안전하게 권력을 손에 쥔 듯하나, 조만간 그들 자신에 대한 신념 혹은 효율적인 통치 능력, 혹은 그 둘 모두를 잃게 될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 후 중간계급은 상층계급을 전복시킨다. 그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고 가장하고 하층계급을 자기네 곁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무섭게 하층계급을 옛날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스스로가 상층계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새로운 중간계급이 어느 한 계층이나 두 계층 모두에서 갈라져 나오고 다시 투쟁이 시작된다. 이 세 계층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일시적으로라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246~7쪽

오세아니아 사회는 궁극적으로 빅 브라더는 전지전능하고 당은 완전무결하다는 신념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실제로 빅 브라더는 전능하지 않고 당에는 결함이 없지 않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데는 끊임없이 그때그때의 임시변통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열쇠가 되는 '흑백'이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신어와 마찬가지로 이 낱말 또한 두 개의 반대 개념을 가지고 있다. 반대편에게 적용할 때는 명백한 사실인데도 흑을 백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버릇을 의미한다. 당원에게 적용할 때는 당이 요구하는 대로 흑을 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충성심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흑을 백이라고 '믿는' 능력을 말하며, 나아가서는 흑을 백으로 '알고' 전에 반대로 믿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끊임없는 과거의 변조를 요구하며 사실상 나머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신어로 '이중사고'라고 알려진 사고체계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258쪽

그는 아직 궁극적인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는 이해했지만 '왜'는 이해하지 못했다. 1장도 3장처럼 모르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이미 습득한 지식을 체계화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읽고 나자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전보다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수파에 속했다고 해서, 심지어 한 사람만 있는 소수파라고 해도 미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이 있는 법이며, 온 세상에 대항해서라도 진실에 달라붙어 있다면 그것은 미친 짓이 아니다. 떨어지는 태양의 노란 빛줄기가 창문을 통해 비껴 들어와 베개를 비추고 있었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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