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품절


그런데 나는 현대의 우리도 중세에 지지 않을 정도로 범람하는 죽음의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텔레비전에서 대량으로 보도되는 죽음, 세상 어디선가 잇달아 터지는 전쟁, 비행기나 열차 사고, 살인, 환경 파괴, 불치병, 아사……. 그리고 20세기 문명 전체가 막다른 곳에 처했다는 문제도 있지. 시대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게야. 중세의 가을이 아닌 20세기의 가을에, 바야흐로 지금 닥쳐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중세인들처럼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좀 염려가 되는구나. -149쪽

하지만 그 감성이라는 놈이 또 문제란 말이야. 텔레비전이 토해내는 대량의 죽음은 매일이다, 알겠느냐? 매일매일 다른 대량 소비재와 똑같은 선반에 진열한 허구화된 죽음을 보여준다면 반대로 감성이 예민한 사람은 방어 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즉 그들은 마비되고 마는 게야. 그렇게 현대인들은 매일같이 죽음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게 되지. -150쪽

죽어버린 그린과 죽어가는 스마일리. 그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허스에게 또한 각별한 '죽음'을 의미했다.
자신의 죽음, 이 죽음은 가장 애를 먹는 생각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죽음을 현실적인 현상으로 생각할 수 없으리라. 다음으로 자신과 상관없는 제삼자의 죽음, 이것은 학문적인 대상으로 냉정하게 생각할 수는 있으나 도무지 진심으로 관여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도 '그'도 아닌, '너'라고 부르는 가까운 이의 죽음, 즉 이번 경우와 같은 2인칭의 죽음은 몹시 현실적이라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에 대한 감정이 사고를 어지럽힌다. -213~4쪽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 머리카락은 매일 60가닥씩 빠지고, 식사를 할 때 장벽에서는 음식물이 통과하면서 7백 억 개의 세포가 감소한다. 서른을 넘으면 신경 세포 중 평균 1퍼센트가 해마다 사라진다. 그 밖에도 매일 증오나 분노, 슬픔, 그리고 사랑마저도 육체를 소모시키고, 세포는 화학적 재난이라는 형태로 파괴되어 간다. 대략 60조에 이르는 세포를 가진 인체이지만, 매 24시간마다 스프 접시 가득한 분량의 세포가 사멸하고 있다. -352쪽

"밀실? 마치 그리운 탐정소설 같구먼. 경찰관도 그런 책을 읽나?"
트레이시는 얼굴을 붉혔다.
"뭐, 뭐 그렇죠. 소설은 어쨌든 3백 페이지 정도로 사건이 해결된다는 점이 좋습니다. 현실의 사건은 구두 3백 켤레가 다 닳도록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놈들은 모르지만 탐정소설은 제게 있어 스트레스 해소약이라 할 수 있지요."
"오호라. 우리는 그 책으로 비유하면 몇 페이지에 있을까? 해결이 코앞에 있는 3백 페이지 부근이라면 좋겠는데……. 흠, 어쨌든 보세나."-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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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1-02-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별찜하고 말았습니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은 마지막 박스에서-
무언가 배울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은 앞의 박스들에서 얻었습니다. 고마워요.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매지님. 잘 지내셨나요? ^^

이매지 2011-02-13 18:47   좋아요 0 | URL
어디선가 좀비 어쩌고 해서 제 취향에 별로 안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완전 재미있어요! ㅎㅎㅎ
궁극의 블랙 유머.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 ㅎㅎ

엘신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지구 귀환 하신거예요? ㅎ

L.SHIN 2011-02-15 19:11   좋아요 0 | URL
네,'앞으로는 잠수 안 타요'라고 확답은 못 드리겠지만,
일단은(응?) 귀환일까요?(읭?)ㅋㅋ

이매지 2011-02-17 00:15   좋아요 0 | URL
일단은, 이라니.
엘신님 아직 혼 좀 나셔야겠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