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수사 미도리의 책장 8
곤노 빈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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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랫만에 '경찰소설'이 땡겨서 여느 때처럼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을까 하고 기웃하다가 최근에 시리즈의 2권이 출간된 <은폐수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좋은 평도 들어왔던 터라 요코야마 히데오, 사사키 조와는 다른 느낌의 경찰소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읽어가기 시작했다. 

  도쿄대 출신으로 캐리어의 코스를 거쳐 현재는 경찰청 총무과장로 근무하고 있는 류자키. 유명 사립대학에 합격한 아들을 도쿄대에 보내기 위해 재수시킬 정도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기우월감이 강한 사람일 뿐 아니라 파벌 같은 인간관계에 신경 쓰기보다는 원리원칙대로만 행동해 주변 사람들에게 '별종' 취급을 받는다. 그런 그가 단순히 조직폭력배들 간의 다툼처럼 보였던 연쇄 살인사건과 아들의 마약 문제를 겪으며 '은폐'에 대해 고뇌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초반에는 엘리트주의에 쩔어 있는 주인공에 다소 반감이 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점점 이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경찰소설과 추리소설은 모두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추리소설에서는 사람보다는 '사건'에 중심이 놓이는 느낌이라면 경찰소설은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에 대응하는 '사람'의 자세 또는 경찰 내부의 알력 다툼이 주가 되는 듯하다. 하지만 곤노 빈의 <은폐수사>는 사건과 사람, 이 모두를 아우르는 힘이 느껴졌다. 때마침 김길태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이 책을 다 읽었기 때문일까. 이 책이 단순히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정통 사회파 추리소설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지는 않지만, 단순히 재미있게 읽고 그걸로 끝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해주는 면이 좋았다.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보다는 녹을 받는 공무원으로써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류자키. 남편감으로는 꽝이지만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류자키 같은 공무원들이 많아질 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현장에서 뛰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상황을 판단했던 그가 현장으로 간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흠, 꽤 재밌겠는걸"이라는 마지막 문구처럼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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