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구판절판


큰 물고기를 낚았다, 또는 놓치고 말았거나 입질도 못 받았다, 만 기억한다면 우리 마음속의 바다는 인공낚시터 물칸처럼 초라해지고 맙니다. 우리가 아주 기가 막힌 하루를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4~5쪽

공동체의 심성은 옆집이 마음에 걸려 차마 고기를 굽지 못했던 것에서 나온다. 먹을 것 없는데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공동체는 촌스러운 것도, 고리타분한 것도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인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58~9쪽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못 사먹는다면 방법은 하나. 낚아 먹으면 된다. -78쪽

밤낚시의 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들 돌아올 때 찾아가는 역행의 맛이 있고 모든 소음을 쓸어낸 적막의 맛도 있다. 넓은 바닷가에서 홀로 불 밝히는 맛도 있고 달빛을 머플러처럼 걸치고 텅 빈 마을길 걸어 돌아가는 맛도 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회 떠놓고 한잔 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밤에 하는 짓이 몇 가지 되는 데 가장 훌륭한 게 이 짓이다. -99쪽

'죽인 것은 전부 먹자'가 내가 세워둔 또 하나의 원칙이다. 이를테면 노래미는 어린 거라도 바늘을 잘 삼킨다. 이러면 놔주어도 죽는다. 죽였으니 가져와서 먹는다. 그만큼 다른 것을 덜 먹게 된다. 화류계를 오랫동안 떠돌았던 한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꺾었으면 버리지나 마라."-109쪽

이렇게 방어와 나는 이 넓은 바다에서 그 시간, 딱 그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녀석은 수만 킬로미터를 돌아다녔고 나는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했는데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물칸 속에서 어색하게 헤엄을 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둘이 만날 확률을 생각해보았다.
엄청나게 높은 숫자가 있고 그 위에 1이 있을 것이다. 하필 그 확률이 맞아떨어져버린 것 때문에 녀석은 이제 일생을 마치게 되고 나는 먹을 게 생겼다. 그러다보니 좀 막막해지기도 했는데, 문득 1963년에 태어난 나와 1994년에 태어난 딸아이가 부녀간이 될 확률도 떠올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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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2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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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0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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