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김열규 지음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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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도깨비는 생사 사이의 '경계 존재'이다. 이 점은 도깨비의 본바탕을 말할 때 매우 큰 뜻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비형의 후손인 도깨비들에게서 그 존재의 '경계성'은 여러모로, 여러 국면에 걸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이므로, 우선 여기서는 요점만 줄여서 말하는 것이 좋겠다.
그가 출몰하는 장소며 시간은,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경계에 걸쳐 있다. 길머리, 고개, 길가의 으슥한 곳, 또는 숲의 그늘 등등이 그가 나타나는 장소이다. 그런가 하면 해질 녘 조금 지나 어둑어둑하기 시작할 무렵, 누기가 치고 비가 올 것같이 음산한 무렵이 도깨비가 나타나는 시간이다. 시간이며 장소가 다 갈림에 처해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도깨비가 사라지는 시간도 대개는 날이 새려 하는 신새벽녘이다. -35쪽

밤 외출로 도깨비들이 벌이는 밤 놀이판, 그 장난의 현장은 우리들 인간의 무의식이 활개치고 나서는 무대나 진배없다. 인간의 억눌린 욕망이 터져오르듯, 사람들의 막힌 욕구가 폭발하듯 도깨비들은 한밤중에 들에 나가 놀이판을 벌이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장난판이며 난장판을 펼치는 것이다. 한밤 도깨비들의 놀이판은 우리들 인간의 꿈의 터전이나 매한가지다. 인간이 못다 한 소망을, 사람이 하고 싶어도 참고 누를 수밖에 없었던 욕망을 도깨비가 대신 채워주고 풀어주는 것이다. 도깨비는 이래서 한국인의 대리인이 되고 변호사가 된다. -46쪽

도깨비는 그러한 인간의 소망을 마음껏 드러내놓는 우리들 한국인의 이드다. 그들은 한국인의 노출되고 실현된 이드의 뭉치고 덩어리다. 그러한 상태다. 그러니 도깨비의 밤놀이는 다소 음산하고 내숭한 인간의 무의식 또는 이드가 펼치는 퍼포먼스의 현장이 되기 마련이다. 도깨비들이 난리를 떨고 요사를 부리며 법석을 피는 것은 그러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깨비답지 못하다. -47쪽

우리들 인생살이에는 의붓어미 노릇 하는 게 쌓이고 또 쌓여 있다. 윤리니 도덕이니 하고 어깨에 힘주고 있는 것이, 규제며 제약이니 하고 으스대고 있는 그 고약한 것들이 모두 우리의 의붓어미 꼴이다. 가시덤불이다. 그 밤귀신 같은 것들의 시새움 때문에 눈칫밥 먹듯 세상을 살고 코치죽 먹듯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칫밥 안 먹고 코치죽 안 먹어도 그만인 세상을 이룩해서 살고 싶다. 그러면서 내친김에 제도며 규제, 윤리며 도덕 따위 쇠사슬을, 올가미를, 아니면 덫을 박살 내고는 제멋대로, 제 깜냥대로 이 짧은 한세상을 누리고 싶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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