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3 - 땅!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2007년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눈 여겨보고 있었지만, 3권이라는 분량 때문에 언제 시간이 나면 느긋하게 읽어야지 하고 미루고 있다가 이번 석가탄신일 연휴(그래봐야 주말에 하루 더 붙어 있을 뿐이지만)의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했다. 미뤄오다 읽은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역시 이런 책은 한 호흡에 읽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육상'을 소재로 한 스포츠 소설이다. 때문에 1권 맨 앞에는 일러두기의 방식으로 육상용어나 대회에 관한 설명이 붙어 있어서 '어쩐지 머리가 아파오는 걸' 하는 생각이 들어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넘겼는데, 읽다보니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대로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크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없었고, 육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육상을 통해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가 됐기 때문이다.

  흔히 달리기는 고독한 스포츠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혼자만 치르는, 1초가 아니라 0.1초를 다투고, 그 짧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경기. 그렇게 홀로 뛰는 육상은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경기는 고독하지 않다. 계주(이어달리기)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각자 개인 경기를 하면서도 늘 내 옆을 달려주는 친구, 나를 응원해주는 동료가 있기에 혼자 뛰는 것이 아닌 함께 뛰는 것이 된다. 물론 자기 구간을 누가 대신 뛰어줄 수도 없고, 그 구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지만 배턴과 함께 앞사람의 에너지까지 받아 달리는 순간은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이런 류의 소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고난을 이기고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류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신지는 너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축구선수인 형을 둔 고만고만한 축구선수일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비전이 보이지 않는 축구를 그만두고, 우연히 육상부에 가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축구를 그만두고 기껏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나 싶었더니, 육상부에 함께 가입한 어린 시절부터 절친인 렌 또한 비범한 단거리 선수. 마치 교과서처럼 모범적으로, 힘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뛰는 렌의 등을 바라보며 신지는 다시 한번 꿈을 꾸기 시작한다. 육상부 담당 선생님인 미짱은 신지의 잠재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육상을 갓 시작한 신지는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도, 긴장에 대응하는 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한 레이스 한 레이스 최선을 다해 달릴 뿐. 그런 신지가 1학년, 2학년, 그리고 3학년으로 성장해가며 육상 실력도 성장해가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현 대회를 넘어 관동 대회까지 뛰는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뛰게 했다. 

  타고난 능력도 있었지만, 엄청난 훈련과 연습으로 기량을 갈고 닦는 신지. 렌을 비롯해서 센바나 다카나시 등 경쟁자들의 러닝을 통해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이를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신지의 모습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신지 뿐만 아니라 천재 혹은 타고난 러너는 아니어도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받아들이고, 땀 흘리는 네기시나 자만함으로 똘똘 뭉쳐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점차 하루고 육상부의 일원이 되는 가기야마, 기록보다는 몸 만들기에 관심을 쏟는 건강식품 마니아 모모우치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달리는 모습에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얼마 되지도 않는 분량인데 굳이 3권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었는데, '제자리로!-준비-땅!'이라는 구성이 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3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가 각 권마다 진행되고 있어 한 권 한 권 끝마치며 어쩐지 함께 조금씩 달려가는 느낌도 들었다. 일본에서는 2008년 4부작 드라마로도 방영된 바 있는 이 작품. 사실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원작을 읽고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는데 이 풋풋함과 열정, 그리고 애정을 영상으로 만나면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되려 책을 읽고 나니 영상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 망설여진다. 기록을 단축해가며 성장하는 육상이라는 경기. 경기는 짧은 시간 벌어질 뿐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땀방울은 결코 미미하지 않음을, 그리고 함께 달리는 이들이 있기에 외롭지만은 않음을 느꼈다. 사토 타카코의 소설은 <노란 눈의 물고기> 이후 두번째인데 특유의 따뜻함이 참 좋은 작가인 것 같다.  

덧) 드라마 정보는 이곳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