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절판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한순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뜬 다음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훑어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제 다 함께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페테르젠 선생님을 추모하자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영정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도 대부분 고개를 숙였다.
아, 지금껏 우리 강당에 이런 침묵이 흐른 적이 있었을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일제히 사로잡은 이런 침묵이. 그러나 나는 이 침묵 속에서 노 젓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33쪽

자의건 타의건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침묵을 견디고 있다는 것은 강당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침묵이 흐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학생들은 옆에 있는 친구들과 눈빛을 주고받았고, 몇몇은 제자리걸음을 했으며, 어떤 남자애는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심지어 서서 조는 아이도 있었고, 틈나는 대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녀석도 눈에 띄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몇몇 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을 이겨 내거나, 아니면 아무 일 없이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하나의 과제처럼 여겨지는 게 분명했다.-41쪽

얼핏 어머니 얼굴에 불만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당신이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못하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어머니에게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자식에 관한 한 뭐든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자식이 저지를 온갖 잘못과 자식이 받을 상처, 그리고 부모에게 안길 실망감을 미리 막아 보려는 모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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