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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코넬리 작품의 장점이라면 일단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것. 지금까지 읽어온 코넬리의 다른 작품들도 그랬지만 유독 이번에 읽은 <실종>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책 뒤표지에 실린 '히치콕'에 빗대는 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실종>은 히치콕의 영화와 꽤 많이 닮아 있었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는 점이라든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주인공, 범인으로 몰리는 것, 맥거핀 효과 등 히치콕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것들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유망 벤처기업의 사장인 헨리 피어스. 약혼자와 헤어진 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전화를 개통하자마자 릴리를 찾는 이상한 전화를 받기 시작한다. 한두 번이라면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릴리를 찾는 남자들의 전화를 받고 피어스는 몇 가지 질문을 통해 LA달링스에 릴리의 전화로 올라간 번호가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된다. LA달링스 측에서도 릴리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 이에 피어스는 작은 실마리들을 통해 사라진 릴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경찰에 릴리 살해에 대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릴리를 관리하는 이들에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는다. 하지만 릴리의 행방은 묘연하고, 피어스 또한 위험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초반에는 왜 피어스가 그렇게 릴리를 찾는 전화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어쩐지 편집증스럽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하지만, 이후 그와 그의 누나에 얽힌 사연이 드러나면서 그런 트라우마가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작의적이긴 하지만.) 그저 릴리에 대한 추적을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대체 릴리는 언제쯤 찾는 거지' 하고 약간은 시큰둥하게 읽었는데, 릴리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이라는 논리적 결론에 내리면서부터는 대체 진범은 누구인지, 진범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 바짝 긴장하게 읽었다.
사건에 대한 몰입이나 캐릭터에 대한 매력은 다른 작품에 비해 덜했지만, 글을 통해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것 같은 생생함은 여전했다. 마지막에 바짝 끌어당기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 전체적으로 좀 밍밍하긴 했다. 만약 저자가 코넬리가 아니었다면, 큰 기대 없이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히 합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둠에 가려진 포르노 사업, 그리고 분자 컴퓨터라는 일반인에게는 아직은 약간 낯선 아이템이 꽤 흥미를 돋운 작품이었다. 마지막에 몇 가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특히 대체 피어스는 경찰을 어떻게 자기 편으로 돌린 건지) 읽는 순간만큼은 나도 주인공과 함께 릴리를 찾는 거대한 음모 속으로 함께 걸어들어갔다. 이제 국내에 나온 그의 작품 중 <허수아비>만 남겨놓고 있는데, 어쩐지 아껴두고 싶은 마음. 이래저래 불만이 많아도 역시 난 코넬리 빠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