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품절


지금은 이렇게 생겨먹은 나지만, 날 때부터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다는 말을 우선 해두고 싶다.
갓 태어났을 무렵의 나는 오히려 순진무구함의 화신이었고, 갓난아기 시절의 히카루 겐지 저리 가라 하는 사랑스러움, 사념(邪念)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해맑은 미소가 고향 산천을 사랑의 빛으로 가득 메웠다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내가 웃으면 그곳에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불길한 웃음이 있을 뿐이다. 거울을 보며 노여움에 휩싸인다. 네놈은 대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이것이 현시점에서 네놈의 총결산인가.
아직 젊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말하리라. 인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있을 리 없다. 젊은이에게 너무 오냐 오냐 하면 아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고 하는데 당년 스물하고도 하나, 머지않아 세상에 태어난 지 사반세기가 되려는 어엿한 청년이 이제 와서 자신의 인격을 변모시키려 궁색하게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딱딱하게 굳어 허공을 향해 우뚝 솟은 인격을 억지로 굽히려 해봤자 똑 부러지는 것이 고작이다.-9~10쪽

사전에는 800만 신이 이즈모에서 간간악악 논쟁을 벌인 끝에 남녀의 연을 정한다고 쓰여 있었다. 고작 운명의 붉은 실을 묶고 풀고 하느라 제국의 신들이 일부러 한데 모인다는 것이다. 그 라면집에서 만난 수상쩍은 신이 한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신들에 대한 노여움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할 일이 그것밖에 없는가. -28쪽

나와 아카시 군의 관계가 그 뒤 어떤 전개를 보였는지, 그것은 본문의 취지에서 일탈된다. 따라서 그 기쁨 반, 쑥스러움 반인 묘미에 관해 상세히 쓰는 것은 삼가련다. 독자도 그런 타기할 것을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시궁창에 버리고 싶지는 않으리라. 성취된 사랑만큼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96쪽

가능성이라는 말을 무한정으로 쓰면 아니 되는 법. 우리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불가능성이다.-156쪽

쯧, 그러지 말고. 오즈를 봐. 그 녀석은 확실히 한량없는 얼간이이기는 해도 중심이 잡혀 있지 않나. 중심이 잡히지 않은 수재보다 중심이 잡힌 얼간이가 결국에는 인생을 유의미하게 살 수 있는 법이야. -1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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