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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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전망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 전망을 마음껏 즐기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선 다소 험준하고 높은 곳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장르 중 가장 험하고 고도감이 높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시와 철학일 겁니다. 시와 철학은, 오르기만 하면 그래서 그 고도감에 적응하기만 하면, 시인과 철학자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는 빼어난 산과도 같습니다. 또한 이런 비유가 적절하다면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을 각각 하나의 봉우리에 견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모든 봉우리들이 우리가 원하는 좋은 전망을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좋지 않은 전망을 준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봉우리에 오를 이유가 없었겠지요. -5쪽

언어를 배우면서 우리가 동시에 배우는 것은 침묵이기도 합니다. 사실 언어가 없다면 침묵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침묵은 언어의 한 가지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지요. -56~7쪽

여러분, 이제 '소리의 뼈'가 보이나요? 그것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다양한 규칙들입니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맹목적으로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그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언어의 규칙이란 마치 척추동물에게 몸의 뼈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들은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지탱하고 있는 뼈의 중요함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뼈에 문제가 생겨서 서거나 걸을 수 없을 때에만, 동물들 혹은 우리 사람들은 뼈가 무엇인지를 감지합니다.
언어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강의실을 채운 침묵이 학생들을 당혹감에 몰아넣은 것처럼, 침묵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사용의 규칙을 마치 상처를 뚫고 튀어나온 뼈처럼 드러나 보이게 한 것입니다. 오직 이럴 경우에만 학생들은 이제 자신들이 사용해 온 언어가 과연 얼마나 맹목적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자각할 수 있습니다. 동물보다 우월한 인간의 중요 징표로 간주된 언어조차도 사실 합리적 근거를 가진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58쪽

아렌트가 생각하기엔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78쪽

근대 이후 인간 사회는 거대한 전체와 미세한 조직들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바로 우리가 속한 거대한 전체는 언제든지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괴물로 손쉽게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지요.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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