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던 천명관의 두번째 장편소설. 사실 아직 『고래』도 단편집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읽지 않은 터라 전작부터 읽어야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이 매력적인 표지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서 이 책으로 천명관을 처음 만났다. 표지에서 풍기는 유머러스함처럼 이 책은 조금 전에 웃었다는 사실도 잊을 새 없이 나를 쥐었다 놨다 빵빵 터트렸다. 평균 나이 49세. 여기, 고령화 가족이 있다. 영화 실패 이후 제작사까지 망하게 한 충무로의 공인 배신자 주인공 나. 새로운 영화를 찍어 멋지게 재기하겠다는 다짐도 잠시, 그에게 그 어떤 일감도 들어오지 않는다.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에게 "닭죽 쑤어놨는데 먹으러 올래?"라는 엄마의 일상적인 전화가 온다. 늘상 거절해왔던 엄마의 초대지만 주인공은 넙죽 엄마의 말대로 닭죽을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이미 전과5범인 백수 형 오함마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 기껏 영역다툼을 끝냈더니, 이번에는 바람피다가 남편에게 걸린 여동생 미연이 딸 민경을 데리고 들어온다. 결국 칠순 노모의 집에 다시금 모여 복작복작 살기 시작한 삼남매. 하지만 엄마는 웬수 같은 이들에게 매일 같이 고기반찬을 해 먹이고, 오랫만에 행복한 미소마저 짓는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이 가족을 둘러싼 비밀이 하나씩 까발려지기 시작한다. 대중은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에 반해 한국문학은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가벼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소위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책을 만나다보니 한국문학도 꼭 무겁고 딱딱한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천명관의 작품을 만나게 됐는데, 끊임없이 낄낄거리게 만드는 게 오쿠다 히데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온갖 사건사고가 펼쳐지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처럼 『고령화 가족』의 등장인물들도 범상치 않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는 엄마를 비롯해 피자 한 조각에 조카 민경과 다투는 삼촌들, 모녀관계가 정이나 가족이라는 끈이 아니라 철저히 돈으로 이뤄지는 민경과 미연 등 『고령화 가족』 속 가족의 모습은 현실과 비현실의 어디쯤에 위치하는 적당한 리얼리티를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의 집단이었다. 빌라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조잘조잘 302호 망나니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할머니들과 함께 나도 이들 가족에 대한 뒷담화에 동참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키득키득거리다가도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짠해지기도 하는, 인생 막장이지만 피가 섞이지 않았거나 반 정도만 섞인 가족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동류의식이 느껴졌던 작품. 우울한 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낄낄대고 싶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