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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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작가들을 접할 때면 어쩐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의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이번에도 어렵겠거니'라고 왠지 주눅든 상태로 어떤 의무감에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르 클레지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읽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라는 다소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은 '밤'이라는 의미의 '라일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다. 유괴를 당해 랄라 아스마에게 팔려와 온갖 집안일을 하며 자라는 라일라. 그녀는 낳아준 엄마 아빠의 이름도, 고향도 알지 못하고 자랐지만, 랄라 아스마가 죽으며 남겨준 귀걸이를 통해 자신의 근원을 조금이나마 짐작한다. 하지만 랄라 아스마의 죽음 이후 홍등가, 프랑스, 미국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타인에 간섭으로 이곳저곳을 떠돈다. 먼 길을 돌아 결국 자신의 근원지인 고향으로 향한다. 

  라일라의 삶은 마치 물살을 거슬러오르는 연어의 그것처럼 고통스럽다. 한쪽 귀는 들리지 않고, 라일라를 만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런 행동이 호의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결국은 그들은 라일라의 순수성을 훼손하려 한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세상을 떠도는 라일라. 뒷표지에서 이 책을 '성장소설'이라 칭했지만 그동안에 만나온 성장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접해온 성장소설은 주인공이 고난 혹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성장하는 과정까지를 담고 있었다면, 이 책은 성장 자체보다는 고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라일라는 이 책에서 성장했다기보다 성장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한다. 물론, 결국 고향에 도착한 그녀가 그동안의 시련을 영양분 삼아 새로운 삶을,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갈 것임은 명백하지만, 그 방식이나 앞으로의 전개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어릴 때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부터 라일라가 자신의 삶의 영역을 지키지 못함을 의미한다. 성장하면서도 라일라는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려는 이들과 투쟁한다. 어린 소녀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련이 찾아온다. 하지만 작가는 라일라의 고통을 연민하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삶의 고달픔, 괴로움,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보여준다. 한 소녀가 겪기엔 너무나 안쓰럽고 끔찍한 일들이었지만, 그런 사건을 감정을 배제하고 보여줘서 더 라일라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두께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르 클레지오가 들려줄 다른 이야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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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매지님도 노벨문학상은 그런 느낌이군요. 나도 그랬는데...
작년에 황금물고기 리뷰에 나도 그런 말 썼거든요.ㅋㅋ

이매지 2010-02-26 23:3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그런 느낌이시군요 ㅋㅋ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거죠 뭐 ㅠ_ㅠ
조만간 나올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헤르타 뮐러도 기대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