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품절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이다.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 법, 아무리 좋은 쪽의 여권만을 사용하고 싶을지라도, 결국 우리는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우리가 다른 영역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다. -15쪽

결핵은 시간의 질병이다. 결핵은 삶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도록 만들며, 살믕ㄹ 돋보이게 만들고, 삶을 정화한다. 영어나 프랑스어로 소모는 '질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암은 질주한다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암은 (궁극적으로) '종말'이다. 암은 알게 모르게 천천히 진행된다. 부고에 흔히 쓰이는 완곡어법은 그 누군가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이다. 암이 지닌 모든 특징이 아주 느리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단어는 애초부터 이런 특징을 나타내는 은유로 쓰였다. 요컨대, 위클리프는 1382년에 이렇게 적었다. "저희들의 말은 암처럼 서서히 썩어가나니"(디모데 후서 22장 17절에 나오는 구절). 초기의 비유적 용법을 살펴보면, 암은 '게으름'과 '태만'의 은유로도 사용됐다. 형이상학적으로 볼 때, 암은 시간의 질병이라기보다는 공간의 질병이자 병리학이다. 주로 쓰이는 암의 은유는 지형학적이며(암은 '확산'되거나 '증식'되며, 그도 아니면 '흩뿌려'진다. 암 종양은 외과수술을 통해 '절제'된다), 암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는 신체 일부를 절단하거나 절개한다는 끔찍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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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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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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