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최후의 날
킴 매쿼리 지음, 최유나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잉카, 마야 문명에 대한 책이 극히 적은 데다가 주로 여행서 혹은 어린이 책에 치중되어 있어서 아쉬웠는데, 최근 <태양의 아들 잉카전>때문인지 역사서 한 권이 출간됐다. 그동안 얇은 책으로 만난 잉카 문명에 대한 갈증 때문에 제법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이 책 『잉카 최후의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봤을 때 단순히 잉카가 어떻게 멸망되어간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했다. 대학 수업에서 잉카 멸망의 원인이나 잉카 문명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내용의 연장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잉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나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이럼 빙엄이라는 미국인 탐험가가 마추픽추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잉카를 발견한 에스파냐 정복자인 피사로에 관한 이야기, 잉카의 황위 계승에 대한 이야기, 오랜 반란 끝에 결국 잉카의 마지막 황제가 죽어가는 장면까지 '잉카'를 다방면적으로 조명한다.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패자인 잉카에 관련한 남아 있는 기록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잉카제국을 기억하고 있는 요라족의 후손과의 만남을 계기로 좀더 객관적으로 당시 잉카에 대해 서술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이 승자의 관점에만 치우친 책이 아닌,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가진 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잉카인이 직접 남긴 자신들의 역사나 문화, 침략에 대한 저항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고유 문자 체제인 키푸도 해독할 수 없으니 그저 갖가지 유물로 그들의 삶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잉카가 단순히 황금에 눈이 먼 에스파냐인에 의해 처참하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멸망당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사연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사회적, 지리적으로 소외된 불모의 땅인 엑스트레마두라 출신으로 사생아로 태어난데다가 가난에 찌들고 까막눈에 변변한 지위 하나 없던 피사로가 자신의 운명을 새로운 땅을 찾는 데 걸었다는 점이나 잉카를 발견했을 때 당시 잉카의 황제였던 아타우알파의 위엄에 피사로와 그의 부하들도 겁을 먹었다는 점 등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시대적인 흐름이라 어쩔 수 없다 해도 정복자들이 에스파냐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원주민에게 침탈을 정당화하는 증명서이자 최후통첩인 '레케리미엔토'를 자기 나라 말 그대로 읽어주고, 차후 원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히 합법적이며 하느님이 인정하신 일이라고 여겼다는 사실에는 화가 났다. 게다가 허수아비 황제로 앉힌 앙코 잉카에 대한 무례한 행동(금과 은을 비롯한 갖가지 물건들을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아내까지 빼앗는 모습, 몸을 묶어놓고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몸에 오줌까지 싸는 등의 인간 이하의 취급까지)은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초반에는 약간 지루한 느낌도 있었는데, 고비를 넘기고 나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특히나 에스파냐인의 무자비한 행동을 더이상 참지 못해 반란을 일으킨 잉카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분연한 마음이 들었다. 책 속에서도 몇 번 언급되지만, 아무리 식민지를 만들고,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렇게 몰상식한 학살은 보기 드물지 않나 싶었다. 자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섬기고, 우상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신전에 불을 지르고, 잉카의 황제들이 죽음을 앞둘 때 개종을 강요하는 모습도 종교의 맹목적인 면을 본 것 같아 어쩐지 불편했다. 

  꽤 넓은 지역을 나름 효율적으로 운영했던 잉카. 그 잉카를 다스렸던 황제도, 그곳에 살았던 잉카인도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의 역사, 그리고 황금빛 문명은 아직까지 남아 많은 그들을 기억하게 한다. 조만간 <태양의 아들 잉카전>에서 다시 만날 그들의 모습.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지만 어쩐지 그들과의 재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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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2-1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잉카전 덕분에, 그리고 매지님 덕분에 나도 책 하나 건졌군요.(웃음)

이매지 2010-02-17 16:13   좋아요 0 | URL
엘신님 입맛에 맞을까 궁금하네요 :)

... 2010-02-1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그렇군요...

이매지 2010-02-17 16:14   좋아요 0 | URL
가끔 서술자가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딱딱하지 않아서 좋더라구요 :)

노이에자이트 2010-02-1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서양의 지배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서양이 제3세계를 어떻게 무자비하게 수탈했는지 실감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매지 2010-02-17 19:54   좋아요 0 | URL
에스파냐인을 보고 자신들이 믿었던 신이라 여겼던 잉카 사람들(아스텍도 그랬지만)이 어쩐지 불쌍했어요. 문명이란 무기가 어쩜 가장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