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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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서 필립 로스에 대한 호평을 읽으며 가장 최근에 나온 『휴먼스테인』을 들었다가 '2권짜린데 괜히 시작했다가 실망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일단 그가 어떤 작가인지 간이나 보자는 마음으로 훨씬 두께가 얇은 『에브리맨』으로 경로를 수정했다. 검은 바탕에 어쩐지 고독해 보이는 한 남자의 얼굴이 그려진 표지처럼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어쩐지 쓸쓸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직 이십대라 그런지 죽음이란 아직 먼훗날의 이야기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이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쩐지 불안해졌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리고 이제는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은 부와 명예, 그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꾸만 삐그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는 죽음을 향해 한걸음씩 고독한 여정을 시작한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위험도가 높은 수술도 하고,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료의 죽음 혹은 투병을 접하며 그는 죽음에 대해 실감하고, 마지막으로 여자가 아닌 삶에 자신의 온 애정을 쏟는다.

  책의 앞부분에도 등장하지만 "죽음이라는 현실"은 "흔해빠진" 것이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경험하는 죽음. 그것은 그저 죽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죽음과 대면하는 주인공은 "그저 살아 있기 위해 그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뿐이었다. 늘 그랬지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는 종말이 꼭 와야 하는 순간보다는 일 분이라도 더 일찍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점점 근력이 떨어지고, 남성으로서의 매력도 다하지만, 사랑을 잃고, 자식도 잃고 홀로 남은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독, 두려움을 곱씹는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작년 이맘 때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아흔이 넘을 때까지도 정정하셨지만 그럼에도 점점 기력이 쇠해져 종내에는 거동도 하실 수 없게 될 때까지의 모습. 그 모습은 얼마나 안쓰러웠던가. 그렇지만 마지막이 되기 전까지 잠꼬대로 "(죽기) 싫다"고 하실 정도로 삶에 대해 애착을 가지셨던 할머니. 결국 자식도, 손자손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시고 조용히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보곤 호상이라고는 했지만 가슴 한 켠이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책 속의 주인공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나 둘씩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쓸쓸해졌고, 삶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일까.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과오에 대해 후회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이 만든 덫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들을 배신했던 주인공. 그는 그렇게 혼자 쓸쓸하게 죽는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이 남겨둔 채 떠난 그. 죽음에서 시작해 삶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죽음으로 끝나는 책처럼 어쩌면 인생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겠지만,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짧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필립 로스는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모든 것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어딘가 건조한 듯 느껴지지만 그 건조함과 쓸쓸함이 매력적인 작품. 조만간 『휴먼스테인』으로  필립 로스를 다시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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