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아니면 핑크빛 표지 때문인지 이번 소설도 당연히 도시인의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그려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첫 페이지부터 여느 때 같은 평범한 일요일, 한강에 떠오른 알몸의 시체를 접하며 '달콤한' 도시가 아닌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만나게 됐음을 직감했다.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빌라. 그곳에 일단 겉으로는 오퍼상을 하고 있는 가장 김상호와 그의 대만인 아내 진옥영, 그리고 그들의 딸 유지와 김상호의 전처 소생인 혜성이 살고 있다. (여기에 따로 나와서 사는 혜성의 친누나 은성까지 다섯 식구다.) 같은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지만 그저 한 공간에 있다는 점만 공유할 뿐 이들은 저마다의 비밀과 삶을 안고 있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하게 각자 단독자로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갔지만, 바이올린 영재인 막내 유지가 어느 일요일 사라지면서 이들 가족의 비밀이 하나 둘 한강변에 떠오른 시체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이 다른 가족과 공유하지 않았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유지는 정말 어디로 가버린 걸까?
띠지의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읽으면서 작가의 어떤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멋진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혹은 전의)가 아니라, 독자에게 등장인물을 한 발이라도 더 다가가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진심이 전해졌던 것인지, 하루하루 더해가는 피로에 좀체 독서에 집중할 수 없던 가운데 이 책을 만났지만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모처럼 피로를 잊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씁쓸함'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의미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가족원의 실종을 통해 한 가족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엄마를 부탁해>와 닮았다. 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와 "시체가 발견된 것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첫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엄마를 부탁해>와 <너는 모른다>는 가족의 실종이라는 큰 줄기만 같을 뿐 근본적으로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엄마를 부탁해>가 가족 내에서 이미 의미상으로는 실종된 '엄마'라는 존재가 실제로 부재하게 된 상황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낸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있다면, <너는 모른다>는 가족의 빛이었던 막내딸의 실종을 통해 의미상으로는 이미 무너졌던 한 가족이 실제로 무너져가는 과정과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삶을 가지고 있던 그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컨대 <엄마를 부탁해>가 '엄마'에 초점을 맞췄다면 <너는 모른다>는 '가족'과 '소통'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중간 중간 어쩔 수 없이 책을 놓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는데, 하물며 약 10개월 간 이 글을 연재로 만났던 이들은 어땠을까? 매일매일 혹여 유지의 소식을 듣게 되지 않을까, 김상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재글을 읽지 않았을까? <달콤한 나의 도시> 한 권만 읽고 정이현의 역량을 나도 모르게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됐다.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가지만 타인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아니 타인보다 더 가족을 모르는 가족. 유지의 실종은 그동안 그렇게 서로를 모르고 지냈던 김상호의 가족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할 수 있게 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수용. 그것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사회를 담담하게 나타내는 글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 또한 저자의 바람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생을 충실히 살아가기를 바라야겠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