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대체 '사람 책'이라는 게 뭘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설마하니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책?이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면서 책을 들어 첫 장을 넘겼다. 알고보니 '사람 책'은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도서관에서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데서 나온 말로. 미리 도서관에 준비된 명단을 보고 읽고 싶은 사람을 골라 대출해 30분 간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이벤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슬쩍 차례를 보니 트렌스젠더, 장학사, 완전 채식주의자, 사립학교 졸업생 등 꽤 구미가 당기는 책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나도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책의 성격 자체가 작가가 런던에서 직접 리빙 라이브러리를 체험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쓴 일종의 리뷰라 작가가 만난 사람들이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재미가 없으면 시큰둥하게 읽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송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작가는 쫀득쫀득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각각의 사람 책에 대해 가질 법한 질문들을 콕콕 찝어서 이야기해주는 것에서부터 작가 자신이 메인이 아닌 전달자이자 리뷰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되도록 사람 책자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때문에 나는 사진으로만 만난 다양한 사람 책들의 이야기에 좀더 관심을 갖고 매료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의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들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갖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 책을 예로 들자면, 흔히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주위에 채식주의자라도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저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을 하며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정작 완전 채식주의자(비건이라고 불리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유제품이나 계란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를 통해 바라본 채식주의자는 자신만의 방식을 강요하지도, 고기를 먹는 사람을 혐오하지도 않는다. 그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취향'일 뿐. 나와는 다른 '이상한 사람'과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에는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 단순히 그가 나와 다른 것이 취향 차이임을 받아들이고 그를 이해하는 순간 사회는 좀더 유연성을 갖게 되고, 각 개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게 되고, 그만큼 사회의 갈등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리빙 라이브러리'가 보편화된다면 우리 사회도 좀더 건강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책을 직접 대출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것도 리빙 라이브러리의 또다른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다고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가장 큰 시작이 아닐까? 언젠가 한국에서도 리빙 라이브러리가 생겨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벌어지는 온갖 갈등이 조금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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