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신선하다, 재미있다는 호평은 들어왔지만 어쩐지 계속 미뤄왔던 책. 첫 페이지를 넘기며 '아!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을까!'라며 한탄했다. 총 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독특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얼핏 박민규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박민규보다는 좀더 현실적이고 사람 냄새가 느껴졌다. 첫 단편인 '나쁜 소설-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이 소설을 접하게 되면서 책을 읽어줄 누군가를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지라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너.무.나.도. 이해가 가서 몰입해서 읽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줄까하다가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방황할까봐 겁나서 나중에 선물해줘야지하고 미뤘다. 이어지는 단편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원주통신' 등등 "작정하고 '내' 이야기들을 좀 써보았습니다"라고 저자가 밝혔듯이 저자의 경험인 듯한 이야기들이 능청스럽게 등장한다. 그중 특히 매력적인 단편은 <수인>이었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대한민국이 사라진 상황.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사라진 상황 속에 소설을 쓰느라 처박혀 있던 소설가가 뒤늦게 나온 상황. 게다가 자신이 소설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쓴 단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시멘트로 봉쇄된 광화문 교보문고를 곡괭이로 조금씩 파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작가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알찬 단편집.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정말 어딘가엔 이런 사람이, 이런 사건이 없을 건 또 뭐람, 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유쾌한 소설집이었다. 이 책을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무려 두 달이나 묵힌 리뷰라니!) 아직도 각각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이기호라는 작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굳이 쓰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리뷰를 굳이 남기지 않았는데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이 책이 떠올라 리뷰를 써야 겠다는 강한 의지(?)가 들어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을 소설집. 조만간 출간될 <사과는 잘해요>와 아직 읽지 않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나 에세이 <독고다이>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독자를 웃다가 울다가 들었다 놨다하는데도 하나도 얄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