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신작이 나올 때마다 관심은 가졌지만 정작 미우라 시온의 작품을 접한 것은 2006년에 나오키 상을 수상한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밖에 없었다. 아직 한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딱히 '이 작가의 스타일은 이것!'이라는 느낌은 서지 않았고 그저 청소년 소설 분위기의 밝고 가벼운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인식만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소개에 끌려 미우라 시온을 두번째로 만나게 됐다.

  도쿄 근교에 있는 작은 섬 미하마. 별다른 사건도 없이 평온하기만 한 이곳에 세 명의 아이가 있다. 섬에서 가장 예쁜 여자아이인 미카, 그런 미카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노부유키, 늘상 아버지에게 학대당하지만 노부유키에게 이상스럽게 애정을 보이는 다스쿠. 온통 일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별다르게 기억할 만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이들은 어느 날 쓰나미를 경험한다. 섬에서 살아남은 것은 마침 밀회를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던 노부유키와 미카, 그리고 이들을 따라온 다스쿠, 누구보다 죽기를 바랐던 다스쿠의 아버지와 미카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냈던 관광객 뿐.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가족과 이웃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 이들. 예상치 않았던 폭력으로 짓밟힌 이들은 섬에서 나와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나영이 사건'이 떠올랐다. 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비참한 사건. <검은 빛> 속에 그려진 사건도 나영이 사건처럼 한없이 무겁고 절망적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버지에게 학대 당하는 아들, 다섯 살배기 아이가 너무 둔하다고 끊임없이 구박을 하는 엄마, 누군가를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협박을 일삼는 사람 등 책 속에는 온갖 폭력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한 번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고통은, 그 절망은, 그 폭력은 한 사람의 내면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끊임없이 그를 흔든다. 

  책 속에서 노부유키는 '폭력에 대항할 수단은 폭력 밖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정이나 애정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등장인물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도 그랬지만, 남겨진 노부유키의 딸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소설이지만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너무나 불편하고,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다. 

  얼핏 소재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백야행>의 중심이 '사랑'에 있다면 <검은 빛>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폭력'을 그려낸다. <백야행>과 <검은 빛>이라는 상반되는 제목처럼(白과 黑) 읽고나서의 느낌도 달랐던 책.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 글처럼 확실히 미우라 시온의 다른 작품과는 급이 다른 작품이었다. 밝고 가벼운 미우라 시온도 좋지만, 이런 식의 어둡고 무거운 미우라 시온도 괜찮은 것 같다. 아직 읽지 못했던 미우라 시온의다른 작품을 읽더라도 이 작품의 여운만은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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