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절판


노부유키는 눈 아래 펼쳐진 광경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거대한 파도는 노부유키에게서 빼앗아간 말과 함께 눈 깜짝할 새에 바다 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경내 한가운데에는 파도가 남기고 간, 물에 젖어 검게 빛나는 바위가 놓여 있었다. 주위 나뭇가지 끝에는 길고 검은 머리칼처럼 해초가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그 사이로 은빛으로 튀어 오르는 빛 몇 개가 보인다 싶었는데, 그것은 달빛에 비친 물고기의 배였다.
그 모습은 무(無)였다. 새카만 어둠이 펼쳐질 뿐이었다. -36~7쪽

남편과 두세 번 만났을 때, '이 사람은 사랑을 안다'고 나미코는 생각했다. 눈빛이나 언동이나 세상을 대하는 자세 하나하나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미코는 아무도 사랑한 적 없는 인간들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끝내 배우지 못하는 인간들을 알고 있었다. -136쪽

다스쿠는 어릴 적부터 동정과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는 데 익숙했다. 사람들은 좀처럼 '부모'라는 존재가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일상적으로 구타를 당해온 다스쿠는 매 맞는 자기 자신을 금방 받아들였지만, 아이를 때리지 않거나 부모에게 맞아보지 않은 어른과 아이들은 '부모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된다, 할 리가 없다'고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세상에 자식을 때리는 부모가 있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침내 별것도 아닌 이유로 매를 맞는다는 걸 인정해도 가엽다며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야단을 칠 거라는 생각에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이 폭력으로 메워지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갑자기 거북한 듯 시선을 돌려버린다. 폭력도 사랑의 일종이 아니겠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대며 납득하려 든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간단히 뒤바뀔 가능성이 있고 증오로 변질되기 쉬운 것이라는 걸 똑똑히 바라보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192~3쪽

노부유키에게 있어 대부분의 사건은 그저 단순한 점에 불과했다. 작은 점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언뜻 보면 선 형태를 띠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하나하나는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점이고, 더듬어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생물을 포함해 모든 물체가 원자로 이뤄지고, 그 원자도 더 작은 것들의 집합이며, 개체로서 자립적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빈틈투성이인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형태를 취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먼지가 되고, 단순한 점의 집합체였음이 명확해질 것이다. -227쪽

단지의 한 집에서 밥을 짓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노부유키와 잠자리를 한다. 열중할 일이라고 해봐야 딸의 교육문제뿐이다.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는 아내는 사바나 한가운데 느긋하게 드러누워 있는 초식동물 같았다. 목덜미에 어금니가 박혀도 얌전하게 긴 속눈썹을 내려뜨린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태도라면, 신뢰는 나태와 같다고 노부유키는 생각했다.-243쪽

누구도 그 짐승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거대하고 흉악한 짐승에게 삼켜지고 다시 게워지고, 그걸로 끝이다.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257쪽

죄의 유무나 언동의 선악에 관계없이 폭력은 반드시 들이닥친다. 그것에 대항할 수단은 폭력밖에 없다. 도덕, 법률, 종교, 그런 것에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바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비틀리고 고통당한 경험이 없거나, 어지간히 둔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상식에 길들어 포기했거나 그중 하나일 것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은 적이 있는 노부유키는 잘 알고 있었다. 폭력으로 상처 입은 자는 폭력으로밖에 회복할 수 없다. 주위의 사랑과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다? 그런 건 무리다. 노부유키는 처자식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야말로 지속하는 사랑의 정체다. 노부유키는 처자식을 거의 사랑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음한다. 평화로웠던 시절의 섬 풍경이 꿈에 나타나 노부유키를 괴롭혔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식의 땅은 없다. 폭력에 상처 입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263쪽

동정이나 애정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있는 한, 형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자기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준 자가 설령 교도소에 3년 동안 갇혀 있다고 한들 아무런 기쁨도 감정도 느낄 수 없다. 형벌은 기껏해야 '이 정도로 참아줘'라며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덮고 얼버무리는, 반창고 정도의 힘밖에 갖지 못한다. 배가 고파 죽어가는 생물에게 먹을 것과 비슷하게 생긴 발포 스티로폼 모형을 주고 배를 채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마워하며 모형을 베어 무는 놈은 어리석다.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공복으로 몰아넣은 놈을 찾아 죽여서 굶주림을 채우거나, 공복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기다리는 방법, 둘중 하나뿐이다. 일시적으로 기아를 채운다 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배를 주릴 일도 생긴다. 그러나 한계가 없다고 절망할 만한 일도 아니다. 죽으면 해방된다.
사실은 이 무정한 이치를 누구나 알고 있다. 모르는 체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여유가 있으니까. 내일 죽는 일은 없다고 믿고, 애정을 믿고, 죄를 범한 자에게는 벌이 내려질 거라고 믿고, 죽음에도 불행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믿는 척하며 살아간다. -280~1쪽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그러나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편하게 운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을 노부유키는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 평온과 구원을 찾아내는 정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미 따윈 없다. 죽음도 불행도 단지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것들은 그냥 다가온다. -281쪽

원하는 대상은 자신을 원치 않고, 원치도 않는 대상은 자신을 원한다. 나도, 미카도. 정말이지, 흔하디흔한 불행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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