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아사다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항상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작가의 이력에 눈이 한번 더 가게 되는 것 같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순탄한 성장기를 보내다 집안이 몰락하면서 야쿠자로 살다가 가와바타 야스타리의 글에서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을 보고 소설가의 꿈을 품었다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만 보면 뭔가 뒷골목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어보니 어두움이나 슬픔, 고통, 잔인함보다는 '따뜻함'이 강하게 느껴져서 좋다. 이 작품 <지하철> 또한 아사다 지로 특유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작은 속옷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지. 그의 아버지는 세계적인 기업의 사장이지만, 그는 어린 시절 형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 아버지와는 인연을 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지는 오랫만에 나간 동창회에서 본전을 뽑겠다고 술은 잔뜩 마신 후 지하철을 탄다. 눈을 떠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형이 죽었던 30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형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신지. 이후 신지는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과거를 보게 된다. 

  누구보다 증오했던 아버지의 과거를 아들이 알게 되면서 점점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부분만 있다면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가 될 터. 영리한 작가는 곳곳에 다른 요소들을 숨겨놓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하철'이라는 지극히 서민적인, 익숙한 매개체를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나도 혹시...?'라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초반에 삼 형제가 지하철의 개통을 구경하러 가는 모습에서는 몇 년 전 동네에 처음 지하철이 들어왔을 때(이렇게 말하면 엄청 외진 곳에 사는 것 같지만;;) 구경갔던 기억이 나서 신선했다. (지금은 그런 신선함도 없이 줄기차게 타고 있지만) 

  역사를, 추억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 신지처럼 '특별한' 경험은 하지 않아도, 지하철에서 만나는 이런 저런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이야기꾼 아사다 지로 덕분에 가슴이 조금은 더 따뜻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한 시간여행을 넘어선 이야기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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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궁의 묘성을 쓴 그 아사다 지로의 작품이군요.전 그분의 역사 소설만은 읽어서 잘 몰랐는데 이런 작품도 쓰셨네요.

이매지 2009-09-08 09:49   좋아요 0 | URL
아사다 지로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묻혀 있는 작품 같아요.
역사소설은 어떻게 쓰셨을까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