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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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올라와 흙을 먹다보니,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게 참 우습게만 여겨졌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불찰주야 직장생활을 하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과,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저녁 반찬을 준비하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기 위해 코피 쏟으며 공부하는 세상 모든 자식들,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열중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그저 덧없고 허망하게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고, 아껴 쓰고, 공부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다 '밥'때문이잖아요. 굶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밥을 사두기 위해, 보다 질 좋은 밥을 사먹기 위해, 그렇게 살인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잖아요. 밥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밥을 탐하니까요(분단도 결국 '밥'때문이 아닌가요?). 한데, 만약 그 밥이 주위에 무한정 널려 있다면, 그냥 삽으로 대충 몇 번 파헤쳐 다 해결될 수 있다면, 그러면 그 모든 노동들은 다 무의미한 게 되어버리잖아요. -62~3쪽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서 우리의 요리에 소금이나 후추를 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고령토 고유의 맛이 퇴색되거든요. 좀 싱겁고, 좀 씁쓸한 맛이 나도, 그건 아주 잠깐이거든요. 그 잠깐을 이기지 못하고 다들 조미료의 힘을 빌리는 거죠. 그리고 그럴수록 본래의 맛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멀어져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미료 맛을 느끼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데 또 실제는 다들 조미료 맛만 보고 있거든요. 모두 그 맛에 길들여져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 요리법을 들으시는 여러분만이라도 조미료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조미료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8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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