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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투박한 표지때문에 왠지 끌리지 않아 읽기를 꺼렸는데, 정작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표지처럼 '하얀' 눈이 생각이 났다. 사실 이 책보다 스콧 스미스의 <폐허>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왕이면 데뷔작부터 읽어보고 싶어서(그래봤자 달랑 2권의 책을 썼을 뿐이지만) <심플 플랜>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녹록치 않은 분량이었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구성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형과 함께 부모님의 묘를 방문하는 행크. 형과 형의 친구인 루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갔다가 4백40만 달러를 발견하게 된다. 변변한 직장이 없는 실업자 상태의 형과 루는 그 어느 때보다 그 돈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 이에 행크는 일단 돈을 챙겨서 있다가 안전해질 때쯤 삼등분을 해서 새 삶을 시작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뭐 하나 잘못될 것이 없어보였던 간단한 계획은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행크의 삶은 주체할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전부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은 눈여겨봤는데, 어쩌다보니 이 책으로 첫 만남을 가졌다. 이 책 자체가 굉장히 인상적이라 다른 라인업에 대한 호기심도 들었지만, '헐리우드식 스릴러'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 책은 '스릴러'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번도 자신이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 하나의 사건으로, 하나의 계기로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보여주는 '심리극'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처음에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비행기 안에 들어가기를 꺼려 겁을 냈던 주인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고, 급기야는 마지막에는 '괴물'이라는 말까지 듣기에 이른다. 하지만 사백사십만 달러라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엄청난 액수의 돈은 평범한 인물을 차츰 좀먹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이 행운은 행운이 아닌 '재앙'에 가까웠다. 누군가 알아채지 않을까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혹시 공범이 불지 않을까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미없이 숱한 피를 흘리고 만다. 하지만 사백사십만 달러라는 돈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과연 그렇게 굴러들어온 기회를 던져버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 또한 행크처럼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짓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오싹해졌다.
심플 플랜의 구성은 지극히 간단하다. 여기 돈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 적당한 때를 봐서 삼등분으로 나눈 뒤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이런 간단한 계획은 내리막에서 눈덩이가 구르며 점점 커지듯 예측할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잇달아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바라보며 분명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음을, 한 번 시작된 일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굴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 인간이라는 존재 또한 좀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심플 플랜> 이후로 후속작인 <폐허>가 나오기까지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폐허>를 읽고나면 그의 작품을 언제쯤 다시 읽을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허>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만큼 <심플 플랜>에서 작가의 역량에 충분히 매료됐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영화로 만들어진 <심플 플랜>을 보며 감상을 곱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