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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대가 ㅣ Mr. Know 세계문학 18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뒤마 클럽>이나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남부의 여인> 등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책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책이 재미있었는데, 몇 권 읽다보니 너무 통속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내려놓았다.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을 이제와 새삼 읽은 것은 순전히 재미있다는 남친님의 추천때문이었다. 뭐 기왕에 추천도 해줬으니 대화 거리라도 만들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난무하는 검술용어에 기가 죽었지만 읽다보니 서서히 이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19세기 말.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스페인에서 홀로 살고 있는 검술 교사 하이메 아스타를로아. 반평생을 귀족의 자제들을 가르치며 살아왔지만, 혼란스럽고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그에게 일은 맡기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은 점점 검술이라는 고리타분한 전통을 경시한다. 그렇게 서서히 인생이 저물어가던 하이메 앞에 아름다운 한 여인(아델라 데 오테로)이 등장해 하이메 전매특허의 기술인 '2백 에스쿠도' 검법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의 청을 거부했지만, 그녀가 굉장한 검술가라는 걸 알게 되어 그녀에게 '2백 에스쿠도' 검법을 가르쳐준다. 그녀와 칼을 맞대며 점점 그녀에게 빠져드는 하이메. 하지만 그녀는 하이메에게 그가 검술을 가르치는 한 후작을 소개시켜달라고 조르고, 그녀와 후작은 곧 연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작은 '2백 에스쿠도' 검법에 의해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아델라 데 오테로 또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이에 후작과 오테로에 대한 복수를 위해 하이메는 자신의 목숨을 건 인생 최대의 대결을 시작한다.
사실 이 책은 따지고보면 굉장히 통속적이다. 자기 밖에 모르고 살던 주인공이 우연히 팜므파탈인 여인을 만나 자신이 그동안 지켜왔던 원칙과 신념을 흔드는 사건을 겪게 된다는다는 점이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꺼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결국 돈 앞에 흔들리는 점 등 읽다보면 앞으로 대충 어떤 전개가 진행되겠구나라는 예상이 되는 책이다. 하지만 그런 통속적이고, 빤한 플롯이 '펜싱'이라는 낯선 소재와 '하이메'라는 캐릭터를 만나 예스런 분위기와 함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인 이사벨 2세 치하의 스페인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지만, 이사벨 2세에 대해, 스페인에 대해, 심지어는 이 책의 주요 소재인 펜싱에 대해 전혀 배경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소설이라 딱 기대한만큼의 재미를 얻을 수 있어서 아쉬웠지만, 하이메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다는 것으로 아쉬움을 덜어야겠다. 플롯 자체보다는 인물의 심리묘사가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었다. 기존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작품을 즐겨 읽었던 독자라면, 혹은 내 남친처럼 검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