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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ㅣ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아직까지 크게 유명하지 않은(혹은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선뜻 읽기가 겁이 난다. 이 작품의 저자인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를 읽을 때도 망설이다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의 2008 top 10 목록에 있는 걸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읽고는 반해버렸다. 당연히 새로 번역되어 나온 <행방불명자>도 보관함으로 고고씽. 처음에는 어버버하다가 마지막에는 앞으로 다시 돌아가 확인하게 만드는 저자 특유의 서술트릭에 또 한 번 빠져들었다.
사람이 띄엄띄엄 살고 있는 늪지 마을. 이곳에서 한 가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이제 갓 식사를 하려고 했던 것처럼 정갈하게 준비가 되어 있고, 예기치 못한 범죄가 일어났던 것 같은 혼란스러움도 없이 그들은 갑자기 사라진다. 르포라이터인 이가라시 미도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느껴 사라진 일가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한편,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해받은 무명작가 '나'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을 치한으로 몬 남자를 미행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 사람이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을 습격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이를 자신의 작품의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미행을 계속한다. 전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사건. 그 실상은 무엇일까?
이런 식의 구조(전혀 다른 사건이 교차되는 방식)의 추리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 또한 별개의 사건으로 보였던 사건들이 결국 하나의 큰 틀을 형성하고, 두 사건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만날 때 사건의 진상은 밝혀진다. 하지만 정작 진상이 밝혀진 뒤에도 한동안 멍 때리면서 앞 페이지를 주섬주섬 다시 읽고, 복잡해진 머릿속의 퍼즐을 하나씩 하나씩 정렬해야 했다. 중반 이후까지 몰아온 기세에 비해 후반 마무리를 마치 휘몰아치듯 전개시켜서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그 휘몰아치는 듯한 엔딩이 이 책의 클라이맥스였지만)
서술트릭만 본다면 어버버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요소들은 <도착의 론도>만큼의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기껏 밝혀진 진실은 너무 진부했고, 트릭 또한 그리 큰 충격을 남기지 못했다. 이 책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구로누마(검은 늪)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늪 속에 잠겨 있는 오물들이 부패되어 서서히 떠오른다는 느낌. 그런 찝찝함이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다소 실망스럽긴 했지만, 오리하라 이치는 이 책 외에도 **자 시리즈를 썼다고 하니 기회가 닿으면(혹 관심이 더 식기 전에) 한 번 더 그의 작품을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