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구판절판


"쿠데타가 일어날 걸세. 장난 아니게 엄청난 규모로 터질 텐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쿠데타를 일으키는 세력이 우리 노숙자들이라는 사실이네."
"노숙자들?"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이 도시에서 쓰레기로 분류되는 열외인간들 전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
"그게 가능할까?"
"가능과 불가능 여부를 묻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니야. 우리는 단지 그런 예언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믿음을 갖는 것뿐이네."
"글쎄. 난 별로 믿음이 안 가는군. 이렇게 허구한 날 술에 취한 딸기코 막장 인생들이 어떻게 무슨 수로 담합해서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건지 말이야."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아마도 그 장소는 용산역이나 삼성역이 될 걸세."
"그런 것도 예언서에 나와 있나?"
"그렇지. 잠깐." (중략)
"왕이 용들의 산과 세 개의 별이 빛나는 곳에 출몰하여 우리의 가난과 설움, 핍박의 한을 갚아주리라."
"그게 무슨 용산역과 삼성역인가?"
"이 친구도 참. 예언을 해석할 줄 모르는군. 자, 보게. 용들의 산이면 뭔가? 그게 곧 용산이지. 세 개의 별은 또 뭘 말하겠나? 바로 쓰리스타. 삼성역을 말하는 거 아닌가?"-27~8쪽

신형 게임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이 신형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템과 새로운 무기, 새로운 캐릭터의 다양한 역동성. 물론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게 존재할 수 없듯 에프피에스 게임의 포맷이야 부처님 손바닥처럼 뻔하지만, 그래도 게임 폐인들에게는 신작이 그들만의 복음(福音)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 관심은 길어야 보름이다. -31쪽

레퍼토리는 금방 바닥이 나버렸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한반도의 평화를 깡그리 말아 먹었다. 6.25 전쟁 때 중공놈들만 없었어도 남북통일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므로 지금이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의 씨를 말려야 한다. 미국은 가장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준 영원한 우방이다, 국가 보안법은 통일의 그날, 아니 통일 이후에도 영원히 수호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신성한 국법이다, 박정희 같은 군인 출신의 강한 지도자가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등등. 간혹 가다 중앙 일간지에 게재되는 광고 문안이나 오래 전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복하는 게 장영달이 하는 시국 강연의 핵심 주제였다. 그리고 그 주제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화도 허용하지 않고 지루함으로 일관되었다. -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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