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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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쯤 새 작품이 나오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온 '블랙 펜 클럽'.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새 책이 출간됐다. 오랜 기다려왔던 터라 이왕이면 두툼한 책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게도 얇은 분량이라 아쉬웠다. 그래도 얇긴 했지만 <편집된 죽음>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표지에 혹해 얼른 읽기 시작했다.

  추남에 가까운 외모에 어디 있어도 존재감이 없는 영국에서 출판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에드워드 램, 그리고 호남형 외모에 어딜가나 눈에 띄는 니콜라 파브리. 어린 시절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알렉산드리아에 총영사의 아들로 온 니콜라와 에드워드는 얼핏 보기엔 공통점이 없어 친해질 리 없었지만 에드워드가 친구들과 함께 발행하는 문예지에 관심이 있던 니콜라가 접근해 둘의 질긴 악연은 시작된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엉망인 원고를 에드워드가 손봐 문예지에 실어줬기에 언제나 니콜라보다 자신이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에드워드. 하지만 첫사랑인 야스미나의 죽음 이후 에드워드는 뭔가 빠진 것처럼 그림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창작에 대한 그의 재능도 꺼져버린다. 한편, 파일럿으로, 외교관으로 승승장구하던 니콜라는 소설가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빛과 어둠처럼 정반대의 삶을 사는 두 사람. 수십년 동안 자신을 무시해온 니콜라의 태도와 오만한 모습을 늘 참으며 때를 기다려온 에드워드. 마침내 니콜라가 공쿠르 상 수상으로 작가로서의 정점에 오르자 그동안 준비해온 복수를 시작한다.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읽었는데, 읽고 나니 추리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심리 스릴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심리가 치부까지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질투와 복수심이 느껴져 오싹해졌다. 누군가를 파멸시키기 위해 완벽하게 조작된 사건. 그리고 파국으로 치닫는 한 사람의 삶. 치밀하게 짜여진 복수극의 대단원을 읽으며 복수를 소재로 한 책의 완결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말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의 결말이야말로 에드워드의 복수의 마침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약간 늘어지는 것 같았지만 조금 지나니 내가 책장을 넘기는 건지, 책장이 저절로 넘어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에드워드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읽고 나서 역자 후기를 보고 알았는데 이 책은 1994년에 출간된 <표절>의 개정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표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역시나 절판된 걸 아쉬워하는 독자들의 아쉬움 내지 이 재미있는 책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안도가 담긴 리뷰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제목과 새로운 표지로 이렇게 다시 나온 덕분에 그동안 이 작품의 진가를 몰랐던 나같은 독자들도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올 여름에 누가 추리소설 좀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추천할 책이 한 권은 생긴 것 같아 기쁘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복수를 꿈꾸지만 정작 복수의 통쾌한(?) 순간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괜히 복수할 꺼라고 칼을 갈며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보다는 이 책에서 에드워드를 통해 대신 복수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덧) 작가는 로맹 가리의 죽음에서 이 책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니, 이 책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책과 함께 읽는 것도 재미를 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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