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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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외롭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외롭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다. 그런데 그날 밤을 고비로 이제는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외롭다는 것은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기분일지도 모른다고 유이치는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얘기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자기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208~9쪽

어두워지면 불을 켠다.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은, 많은 것을 느낀다. -216쪽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푼돈을 모으고, 휴일에는 명품 매장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본모습은...... 나의 본모습은'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3년쯤 일하고 나면 머릿속에 그렸던 자신의 본모습이 실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후에는 자기 인생을 거의 포기하고, 가까스로 찾아낸 남자에게 미래를 통째로 던져버린다. 그렇게 통째로 걸어본들 남자 쪽은 당혹스러울 뿐이다. 내 인생 어떻게 해줄 거야? 이번에는 그 말이 입버릇이 되고, 서서히 격화되는 남편에 대한 불만에 반비례해 자식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간다. 공원에서는 다른 엄마들과 경쟁하고, 어느새 친한 그룹을 만들어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자기 자신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친한 사람들에게만 의지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는 그 모습은 중학교, 고등학교, 단기대학에서 줄곧 보아온 자신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271~2쪽

언제쯤이었을까, 다마요가 미용사 남자와 사귀었을 무렵, 똑같은 말을 했었다. 데이트가 끝나면 그 순간부터 외롭다. 또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당시에는 그런 기분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는 것뿐인가, 그런 마음으로 용케도 평범하게 지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쓰요는 차 뒤를 좇아 달리고 싶었다.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유이치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299쪽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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