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연예인들이 책을 낸다고 하면 '이름 좀 알려졌다고 돈 좀 벌려고 책 썼나?'라고 일단 색안경부터 쓰고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차인표가 보통 연예인들이 내는 '에세이'가 아닌 '장편소설'를 출간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살짝 놀랐다. 게다가 근 십년이나 그의 가슴속에서 커간 원고라니.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호기심이 동해 읽게 됐다. 

  백두산 근처에 위치한 호랑이 마을.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던 훌쩍이와 촌장님의 손녀인 순이등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 마을에 어느날 호랑이 사냥꾼인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백호를 잡겠다며 찾아온다. 무뚝뚝하고 수줍음이 많지만 동년배의 아이들보다 생각이 깊은 용이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순이에게 끌리지만 엄마를 죽인 백호를 잡기 위해 떠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일본인 장교 가즈오를 비롯한 일본군이 인구조사를 한다는 목적으로 호랑이 마을을 찾아온다. 못된 짓을 일삼는다는 소문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의 일도 도와주던 일본군. 마을사람들이 '생각보다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상부에서 순이를 위안부로 데려간다는 명령이 내려오고 이에 순이를 구하기 위해 가즈오와 용이의 목숨을 건 구출작전이 시작된다.

  위안부로 끌려가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캄보디아에서 반세기를 살았던 '훈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위안부 문제를 소설로 쓸 생각을 했다는 차인표. 그는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호랑이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의 시점으로 쭉 진행되는 평범한 소설과는 달리 이 책은 제비의 관점으로, 가즈오 대위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때로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전지적 관점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런 시점의 변화는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왔고, 이런 다양한 시점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마음의 변화나 사건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엄마가 무릎에 아이를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것 같은 따뜻함은 물론이고, 슬픔과 아픔, 안타까움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문체때문인지 동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것도 벌써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반세기도 전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기에, 아니 경제개발이라는 목적을 위해 돈과 바꾼 덕분에 아직도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제대로 사과도 받지 못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할머니들은 여전히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줄까? 우리 할머니들이 겪은 이야기가 아닌 그저 교과서에서 스치듯 본 이야기로 아이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잘 가요 언덕>처럼 아이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은, 메시지도 담은 소설이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연예인의 대명사가 된 차인표. 그의 네임벨류를 빌려 나온 책이라고 우습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용서와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혹 다음 작품을 쓸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올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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