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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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말일까요? 아무래도 이 집에는 기묘한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름의 우연의 일치도 그 하나고. 그리고 저, 아야카 짱이 봤다는 계단의 사람 그림자라든지, 소리라든지."
"확실히."
야리나카는 천천히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말이지, 무슨 일이든 수수께끼가 있는 편이 좋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나?"
"수수께끼가 있는 편이?"
"아무리 매력적인 것이라도 모두 알아 버리면 시시하다는 거야. 그것은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지."-132쪽

"소설에는 소설을 즐기는 법이 있지요. 생생한 현실의 사건도 그야 재미있지만, 그것과 탐정소설의 묘미는 또 다르답니다."
"어라."
내가 말했다.
"오늘 아침-아니, 이미 정오가 지나서였습니까, 그때의 이야기로는 탐정소설 따위보다도 경시청 잡지 쪽이 훨씬 재미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한 측면도 있다는 거지요, 그건. 즉 그, 자극으로서는."
"자극이요?"
"그렇소. 어떤 종류의 탐정소설이 머리에 주는 자극에는 그와는 또 다른 강렬함이 있겠지요. 현실을 질질 끌고 오지 않고 마음껏 무섭고 잔학한 놀이를 즐기자는 듯한."
"뭐. 그러네요."
"그러니까, 탐정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역시 가급적 엉뚱한 것이면 좋지요. 너무나도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을 지겹도록 읽을 바에야 경찰 수사기록을 훑어 보는 편이 낫죠. 그쪽이 훨씬 리얼하다는 의미에서는 자극이 되고."-139~140쪽

미개 사회나 고대 사회에서는, 사람의 이름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로서 즉, 마치 그 사람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파악되었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인은 인간이란 '육체'를 비롯한 아홉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 중의 하나는 바로 '이름'이었습니다. 그린란드 사람이나 에스키모들도 인간은 '육체' '영혼' '이름'의 세 개가 모여서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파악해서 저주를 걸면, 그 이름의 소유주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자기 본명을 좀처럼 타인에게 밝히지 않아요. 타인의 본명을 알아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불러도 대답을 하면 안 된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에 따르면 사람은 세 개의 이름을 갖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내면의 이름' 혹은 '존재의 이름'이라고 불리고, 이것은 비밀입니다. 두번째는 통과의례 때 붙여지는 이름으로, 연령이나 신분을 나타냅니다. 세 번째는 이른바 통칭으로 이것은 그 인간의 본질과 관계가 없고. -195쪽

동기, 동기 쉽게 말하지만, 결국 그것은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체가 아니라 사람 마음의 형태인 것이다. 그런 것을 당사자가 아닌 인간이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281쪽

미스터리는 질서 회복의 드라마라고 하지. 그 말대로다. 탐정의 역할은 그렇게 네거티브한 가치가 부여된 타인의 행위를 들추어내어 집단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데 있다. 그곳에는 반드시 집단이 이 사회의 '정의'라는, 이 또한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가치를 근거로 존재하는 것으로, 더더욱 그 배우에는 민주적 다수라는 말로 장식된 천박한 권력 구조가 놓여 있다는 거야. 탐정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든 하지 않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이, 정말 싫은 도식이 아닌가.
경찰관이라는 것은, 정말로 그 도식을 단적으로 나타낸 존재일거야. 학원 분쟁 때의 광경을 떠올려 봐. 당시의 학생 운동을 딱히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쇠파이프와 경찰봉, 화염병과 최루탄 양자의 폭력 사이에 대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까. 두랄루민 방패를 경계로 썩은 권력으로 지지된 '정의'와 그에 대한 편의상 좋지 않은 '악'과의 구분이 있었을 뿐이야. 설사 개별적인 상황이 얼마나 다르든, 타인의 소행을 범죄로 들추어내어 심판하는 것, 결국 그것이 저급한 권력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폭력인 데는 변함이 없어. 그렇지?-44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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