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지 않아도 보기 드물게 내가 몇 번이나 읽었던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때문에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이라는 제목의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도 이거 뭐 엘러리 퀸에 대한 오마주인가라는 생각에 혹했다. 이 책 이후에 출간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외딴 섬 퍼즐>이나 <하얀 토끼가 도망간다> 등의 책도 꽤 괜찮은 평들이 있어서 관심이 갔는데 이왕이면 순서대로 읽자는 생각에 뒤늦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데뷔작인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11살 때부터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13살 때 엘러리 퀸의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에 감명을 받아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에 사로잡혔다는 역자의 말처럼 저자가 엘러리 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월광 게임>의 내용에서도 엘러리 퀸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이나 언급되고, Y의 비극이라는 부제 역시 엘러리 퀸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엘러리 퀸을 모방해 국명 시리즈도 발표했다고 하니 저자의 엘러리 퀸에 대한, 그리고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의 이름과 동일한 주인공이 책에 등장하는 것도 엘러리 퀸과 비슷한 듯)

  여느 데뷔작이 그렇듯이 이 책은 다른 추리소설과 비교해봤을 때 강도가 상당히 약한 편이다. 우연히 함께 캠핑을 하게 된 사람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갖히게 된 상황. 그 속에서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간다는 설정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류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이 책의 분위기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가는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누구도 믿지 못하고 각자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의심하긴 하지만 결국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모습이 독특했다. 주위를 둘러싼 어두움 속에서도 약하지만 작은 불빛을 내고 있다랄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좀 더 밀어붙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지만, 오히려 느슨한 전개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솔까말 이 정도 임팩트라면 란포 상 수상에 실패한 것도 이해가 간다)

  엘러리 퀸처럼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사실 이 대결은 상당히 불공평하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어쩔 수 없는 장벽때문인데, 공감할 수 없는 이런 트릭이 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이미 도전장을 받는 순간 평범한 한국 독자는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뭐 책에 나와있는대로 다잉 메시지란게 자의적으로 자기가 가장 마음에 드는 흥미로운 해석을 남한테 강요하는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 책에서는 이래저래 신본격 추리소설 작가라는 명성을 맛만 본 정도라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독자라도 약간 미스터리한 성격이 가미된 청춘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 책이었다. 엘러리 퀸을, 그리고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슬쩍 슬쩍 언급되는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나 책들이 덕심을 살짝 충족시켜줄 책이 아닐까 싶었다. 이어질 학생 아리스 시리즈와 작가 아리스 시리즈도 일단 읽어보고 다시 판단해야겠다. 생각보다는 밋밋했던 아리스가와 아리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