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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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것이 그런 겁디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모기장에 모기 들어오듯이, 세 벌 네 벌 진흙 처바른 벼락박에 물 새듯이 그렇게 생깁디다. 말했듯이 손구락 하나 안 잡았는디, 새벽에 그 사람 갈 때까지 잠도 안 잤는디, 세상에, 한 지붕 아래 한방에 누웠다는 이유로, 날밤을 같이 샜다는 똑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남 같지가 안 합디다. -49쪽

그 사람,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는 우리 사랑이 성공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헤어졌지마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이요. 연애를 해봉께, 같이 사는 것이나 헤어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디다. 마음이 폭폭하다가도 그 사람을 생각하믄 너그러워지고 괜히 웃음이 싱끗싱끗 기어나온단 말이요. 곁에 있다면 서로 보듬고 이야기하고 그런 재미도 있겄지만 떠오르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오지는 않지 않겄서라우. 아, 곁에 있는디 뭐 하러 생각하고 보고 싶고 하겄소. 그러니 결혼해서 해로한 것만큼이나 우리 사랑도 성공한 것 아니겄소. -61쪽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 축이 결단이라면 또 한쪽은 전전긍긍, 말이 되든 안 되든 이런저런 생각이 밤하늘 별빛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짝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91쪽

여러 자식 중에 유독 그녀를 가슴아파하던 어머니는 그러고 세상을 떴다. 어미의 죽음이란, 세상천지에 안길 품이 없어져버렸다는 소리이다. 물론 그녀는 힘들어서 못살겠어요, 이렇게 울며 안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라서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나그네 품속 깊이 갈무리한 금반지 같은 거였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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