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절판


1874년 4월 16일, 에든버러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길 없는 이상 강추위에 도시는 꽁꽁 갇혔다. 오늘이 세상에서 제일 추운 날일 거야. 노인들은 생각했다. 해가 영영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바람은 살을 에는 듯했고, 눈송이는 바람보다 가벼이 떠다녔다. 흰색! 흰색! 흰색! 흰색의 소리 없는 폭발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흰색이었다. 집들은 증기 기관차처럼 보이고, 굴뚝들에서 뿜어져나오는 회색 연기에 강철 같은 하늘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9쪽

사랑 때문에 느끼는 즐거움이나 기쁨은 언젠가는 모두 고통으로 되갚음 받게 되어 있어. 많이 사랑할수록 앞으로 닥칠 고통은 두 배, 세 배가 되는 거야. 넌 허전함을 느낄 거고, 그 다음엔 질투의 괴로움,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통, 버림받는 느낌, 부당하다는 느낌을 알게 될 거다. 뼛속까지 시린 한기를 느낄거고, 네 살갖 밑에 얼음장 같은 피가 흐르는 것 같을 거야. 네 심장의 시계장치는 폭발할 거야. 내 손으로 직접 달아주었으니 그 기능의 한계야 내가 완벽하게 알고 있지. 어쩌면 강도 높은 쾌락에는 그런대로 견딜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랑의 슬픔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는 못하단다. -40쪽

첫째, 시곗바늘을 건드리지 말 것.
둘째, 화가 치밀어도 꾹 참을 것.
셋째, 절대로,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사랑에 빠지면 심장 시계의 긴 바늘이 네 몸을 뚫고 나오고, 뼈는 산산이 부서지고 심장의 시계장치는 다시 고장나버릴 테니까. -45쪽

불가능한 것을 믿게 되는, 우스꽝스럽지만 멋진 순간은 항상 있단다. -49쪽

아픔을 두려워할수록 아플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법이란다. 줄타기 광대들을 보렴. 그들이 외줄 위를 걸어갈 때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할까? 아니야. 그들은 위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보는 거야.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평생을 보내면, 사는 것이 끔찍하게 지루할 거다. 알겠니? ...... 내가 알기로 무모한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어! 너만 봐도 그렇지 않니? '무모함'이라는 말에 눈을 빛내잖아! 아아! 열네 살에 한 여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유럽 대륙을 종단할 결심을 했다면, 무모한 기질이 있는 게 확실해. 안 그러니? -92쪽

네 말마따나 꿈속의 그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네 심장에 있어. 네가 태어날 때 인공으로 갖다붙인 시계 모양의 심장 말고, 진짜 심장, 그 시계 밑에 있는, 살과 피로 이루어져 고동치고 있는 심장 말이다. 넌 그 심장으로 작업해야해. 인공 심장장치 같은 건 잊어버려라.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될 거야. 신중하게 행동하지 말고, 계산하지도 말고 다 주는 거야. 너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라고! -93쪽

포커 치는 노름꾼처럼 굴면 안 돼. 네 두려움이나 의심 같은 걸 절대 드러내면 안 된다는 뜻이야. 이 게임에서 네게 가장 중요한 패는 바로 네 심장이야. 넌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연약함을 감수하고 네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넌 그 심장시계 덕분에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어. 네 남다른 점이 널 매력 넘치는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고!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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