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 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2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경찰물을 크게 좋아하지 않지만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는 말에 혹해서 읽게 된 작품. 나름 읽은 분들의 평도 좋고, 마침 아사히에서 개국 50주년 기념 드라마로 만들기도 해서 겸사겸사 읽기 시작했다. 상,하권 합하면 약 9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읽기 전에는 두꺼워서 며칠 읽겠구나 싶었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니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져서 3시간 남짓한 시간에 다 읽어버렸다. 만약 안조 세이지, 안조 다미오, 안조 가즈야 이 세사람이 비슷비슷한 삶을 살았더라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경관의 삶을 살면서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어 3가지의 이야기를 별개로 읽는 느낌도 들었다. 

  전후 혼란한 상황.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했던 안조 세이지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는 수입은 적을지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경관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다행히 이 시기는 이름만 쓸 줄 알면 경관으로 뽑아준다고 할 정도로 수요가 많던 시절. 안도는 별 문제없이 경관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아내의 바람대로 주재경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간다. 그리고 바라던 주재 경관이 됐건만 주재관 옆 5층탑에서 불이난 날 훌쩍 사라져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된다. 근무중이었음에도 그의 죽음은 순직이 아니라 자살로 처리되고,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장남인 다미오는 경관이 된다. 하지만 뛰어난 고교 성적때문에 그는 경시청 공안부의 명령에 따라 훗카이도 대학에 잠입요원으로 선발되고 스파이 생활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신경이 너덜너덜해져버린 다미오. 애초부터 아버지와 같은 주재소에서 근무하기를 원했던 그에게 주재 경관은 먼 일처럼 느껴졌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경찰학교 동기생(피가 섞이지 않은 삼촌들)의 도움으로 주재 경관 생활을 시작한다. 그 곳에서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다미오. 하지만 그는 결말이 눈 앞에 다가온 순간 인질범이 쏜 총에 순직하고 만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풀지 못한 숙제는 손자인 가즈야가 물려받는데... 과연 가즈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품었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우에다 공원에서 일어난 남창 살해 사건과 철도원 직원 살인사건. 세이지는 얼핏 보기에는 관계가 없어보이는 이 두 사건의 범인을 동일인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탐문 수사를 시작한다. 원래 수사는 주재 경관의 일이 아니었지만 살해당한 남창인 미도리와는 아는 사이였고, 철도원 직원은 뒷 집에 살던 사람이라 수사를 계속한 것. 얼핏 보기엔 별 거 아니게 보였던 사건은 죽은 두 사람이 경찰의 끄나풀이었다는 얘기가 나오며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기껏 범인의 정체에 다가섰을 때 세이지는 죽게 되고, 이 사건은 아들과 손자까지 대를 이어 진행된다. 크게는 이 사건이 중심에 놓이지만 범인의 정체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지라 범인의 정체보다는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세 명의 경관의 서로 다른 삶이 더 관심을 끌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세 명의 남자. 하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도 달랐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굽히지 않는 올곧음이 있었던 세이지,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했던 다미오, 그리고 대의를 위해서는 소소한 부정은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즈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세 사람의 삶도 달랐지만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방식 또한 달라서 재미있었다. 

  단순히 60년에 걸쳐 하나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흑과 백의 경계 위에서 경찰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있었기에 그냥그냥 재미있는 소설보다는 괜찮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또, 전후 일본에서부터 199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일본의 현대사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재미로 남았다. 전후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았던 일본이 한국 전쟁을 통해 서서히 경기를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며 왠지 안타까웠다. (사실은 속이 좀 쓰렸다.) 시대적인 배경과 맞물려서 진행되서 그 시대가 경찰에게 요구하는 능력이나 태도가 변해가고, 그 과정에서 갈등도 생겨나는 것이 흥미로웠다. 각 부서가 가진 저마다의 색깔, 일본 경찰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인 캐리어와 논캐리어의 갈등, 삼대째 경찰로 살아가며 지워지는 주위의 시선과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 등이 지루하지 않게 진행된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스페셜 드라마로 방영한 <경관의 피>를 봤는데, 60년에 걸친 이야기를 단 4시간에 풀어내느라 몇몇 설정이 바뀌고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책과 달리 이야기의 전개가 비약적인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 또 드라마에서는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기때문에 재미가 반감된 것 같다. 에구치 요스케를 비롯해서 요시오카 히데타카, 이토 히데아키, 시이나 킷페이 등 꽤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서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그래도 드라마와 책 둘 다 보고나니 역시 원작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사사키 조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꽤 기대를 하고 봤음에도 만족스러웠다. 미스터리는 약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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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3-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리소설로는 꽝이지만 다른 부분은 정말 좋더군요.

이매지 2009-03-06 22:54   좋아요 0 | URL
정말 '추리'부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쉽더군요.
뭐 여기에 추리까지 끌고 왔으면 꼬였을 수도 있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