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일러스트와 희귀 사진으로 본 근대 조선 - Korea Illustrated by British Weeklies 1858-1911 그들이 본 우리 5
김장춘 엮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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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래픽>지를 만나고, 그 속에서 한국의 삽화를 만나 고서, 고지도, 옛날 신문 등 한국관련자료를 모았다는 저자처럼 나 또한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다보니 일러스트와 사진을 통해 조선이 근대 풍경 속으로 들어가 나 또한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호기심과 이방인의 방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조선인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속에 소개된 일러스트와 사진은 대부분 영국의 시선에서 그려진 것으로 런던에서 발간된 3대 주간 화보신문인 <런던뉴스>, <그래픽>, <스피어>지에 게재된 것 중 261점을 골랐다고 한다. 런던에서 두세시간 거리에 있는 헌책방이란 헌책방은 모두 뒤져서 자료를 수집했다는데 저자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처음 발견했을 때 유럽인들이 그랬듯이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역시 조선을 미개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조선의 기이한 풍습이라는 제목으로 부친상 시에 상복과 얼굴 가리개, 버들가지로 만든 모자를 쓰는 것이나 음력 4월 8일에 여인의 골짜기에서 여성축제를 하는 모습을 소개했고, 조선의 청년들의 기이한 취미라는 제목으로는 석전과 그네타기를 소개한다. 톰 브라운이라는 화가는 조선을 웃기게 생긴 모자의 나라로 보기도 했고, 조선의 내륙을 여행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식의 그림도 있었다. (그는 위험한 조선을 빵과 잼을 지참하고 무사히 여행했다고;;) 이런 류의 그림을 하나씩 보면서 단순히 자신의 풍습과 다른 풍습을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는 시선이 영 마뜩잖았다. 

  당시 조선은 거문도 사건,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나름 큼직한 사건이 많았으나 화보신문에는 평균적으로 6개월에 한 번 꼴로 조선은 다뤄졌다고 한다. 이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 확장에는 조선보다는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이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식민지 확장과 일본의 식민지 확장과는 맞물려서 일어났기 때문에 당시 영국과 일본은 영일동맹을 체결해 손을 잡는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 책에 소개된 많은 부분에서 친일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한일의정서 체결에 대해서는 '조선조정은 오랫동안 극동의 웃음거리가 되어 오면서 외국간섭이 불가피했음. 이토에 의하면 일본은 지혜롭고 친절하게 개혁의 길로 조선을 이끌 것. 아울러 새 식민지 조선의 거대한 지하 자원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고, 의병문제와 민비 시해 사건은 다루지 않았으며, 일본의 새 식민지 하에서 더럽고 좁은 길이 현대화된 도로로 바뀌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이토 총독이 조선에 축복을 부여하여 여러가지 평화로운 개혁(예를 들어 제국병원 의과대학의 건설)을 시행했다고 표현한다. 그림과 사진이라는 객관적인 매개물을 자신의 주관을 개입해 왜곡하고 변형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언론이나 사관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은 미개하고 더러운 나라였을지 모른다. 그 때문에 나는 꽤 많은 부분에서 한 편으로는 불쾌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광화문 해태상 위에 올라가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외국 선박에 호기심을 보이는 구경꾼들의 모습 등을 보면서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기도 했고, 짧게나마 사진이 실린 안중근의 모습이나 고종의 후궁이었던 엄귀비의 모습(수업을 듣다가 궁금해져서 한 번 찾아봐야지했는데 깜빡하고 있었다.)을 보면서는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편향적인 시각으로 소개된 조선. 그렇다고 지금 조선이 아닌 한국이 전 세계에 왜곡되지 않고 소개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새삼 느껴졌다. 두께도 별로 두껍지 않고, 그냥 한 번 눈으로 그림만 보고 지나간다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볼 책이었는데 자꾸만 그림과 사진 속의 조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근대 조선의 풍경이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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