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순간
빌 밸린저 지음, 이다혜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작년 봄 쯤에 읽었던 <이와 손톱>은 2008년 베스트 10에 서슴없이 넣을 정도로 내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첫인상이 좋았던 빌 밸린저의 작품이 몇 권 더 나왔지만, 어찌어찌 미뤄오다 우연히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서 발견하고 냅다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제법 얇은 분량이 부담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간 빌 밸린저의 다른 작품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기에 간만에 게걸스럽게 읽어갔다. (올해 읽은 첫 추리소설이다.) 
 
  주택가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된 한 남자가 있다. 다행히 목이 뎅강 잘리지는 않았고, 발견자의 지혈로 인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왜, 누구에게 목이 잘린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경찰이 찾아와 자신의 이름이 빅터 퍼시픽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그조차도 그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만 느끼는 빅터. 병원에서 퇴원해 자신을 구해준 여자를 찾아가 한동안 신세를 지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위험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이 책 역시 <이와 손톱>처럼 초판봉인봉으로 출간됐는데, <이와 손톱>의 경우에는 정말 허겁지겁 봉인 해제를 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설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결말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봉인 해제. 그리고 결말은 정말 내가 생각했던 그 결말이라 왠지 허무했다. 하지만 고전이니만큼 트릭에 연연해하지 않고 읽는다면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목이 잘린 채 살아나 과거를 찾는 빅터의 이야기와 1년 뒤 빅터의 죽음을 조사하는 경찰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로 진행되어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기억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기술에 의지해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가는 고독한 사내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제목 때문인지 왠지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같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느낌도 풍기면서, <환상의 여인>도 떠오르는 등 몇 편의 추리소설들이 떠올라 나름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이와 손톱>만큼의 인상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빌 밸린저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나봤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아야할 듯 싶다. 이제 국내에 출간된 빌 밸린저의 남은 작품인 <연기로 그린 초상>을 통해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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