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뒤 내 인생을 스쳐간 사람들은 이제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나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되니 힐에 대해서는 감정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기이할 정도로 관대했던 건 사실이다. 이 세계와 인간들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은 현재의 단편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세계를 날마다 스쳐가는 그림자였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수많응ㄴ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존재다. 선이든 악이든 결국 과거의 산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는 현재가 없다.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