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모토 소우의 마지막 작품인 <바람의 정원>. <삼가 아룁니다, 아버님>을 보고 연달아 본 작품이라 <삼가 아룁니다, 아버님>에 나온 조연들의 출연을 반가워하며 볼 수 있었다. 쿠라모토 소우의 다른 작품처럼 잔잔한 진행과 따뜻한 내용, 그리고 예쁜 영상이 돋보였던 작품. 쿠라모토 소우 은퇴작, 후지테레비 개국 50주년 기념 드라마, 오카타 켄 유작, <북쪽의 나라에서>, <자상한 시간>에 이은 후라노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등 나름 얽힌 이야기가 많은 드라마라 한 번쯤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대학 병원의 마취의로 일하고 있는 시라토리 테미. 마취학계에서는 제법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사생활에서는 낙제. 자신의 여자 관계때문에 아내가 자살하고, 아내의 자살로 아버지로부터 의절 당한 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고향인 후라노에 돌아가고 싶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으리라 생각하기에 망설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말기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보기 위해 몰래 후라노로 떠난다. 



  쿠라모토 소우의 다른 드라마처럼 이 드라마 역시 꽤 잔잔하다. 때문에 처음에 3화까지보고 그 지루함에 한 번 접었다가 종영된 뒤에 다시 차분히 봤는데, 뒤로 갈수록 주인공인 시라토리가 암과 싸우며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잔잔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의 옹졸함때문에 아들과 그동안 화해를 못했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밤에 아들이 살고 있는 캠핑카에 가서 약에 의존한 채 잠든 아들을 보는 장면과 6년만에 아들과 화해하는 장면에서는 코 끝이 찡해졌다.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남자가 아버지와 화해하는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곁가지로 그려지는 이야기들도 꽤 괜찮았다. 예를 들어, 지적장애가 있는 타케시가 바람의 가든에서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고 그를 대천사 가브리엘으로 착각하고 벌어지는 이야기(타케시에게 아버지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나 함께 생전에 엄마(아내)가 좋아했던 곡을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타케시에게 충격을 안겨줄 수 없기에 아버지라고 당당히 밝힐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 아버지로 해주지 못했던 추억을 가브리엘이라는 대상을 가장해 만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라토리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무명 가수의 노래도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애절한 느낌을 더해줬던 것 같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곳곳에서 웃음으로 풀어줘서 끝까지 관심을 갖고 볼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농담을 하며 떠난 시라토리의 모습을 보며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주인공 시라토리를 연기한 나카이 키이치의 연기가 정말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더불어 지적 장애 아동을 연기했던 카미키 류노스케를 보면서 왠지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쿠니나카 료코가 나와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그녀의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어찌됐건, 다소간의 지루함만 참고 본다면 예쁜 영상과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드라마. 2화에서 멍멍이 호타루가 죽었을 때 할아버지가 가쿠에게 해준 대사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습니다. 할아버지도 곧 죽을테고 가쿠도 루이도 언젠가는 죽어요. 죽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반드시 지나는 길이에요. 가쿠는 개가 죽어서 지금 울고 있어요. 하지만 꽃이 생명을 잃어 시들어 죽을 때는 일일이 울지 않지요? 우나요? 동물과 식물은 차이는 있지만 둘 다 같은 생명이예요. 하지만 꽃은 죽을 때 피를 흘리지 않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크게 동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같은 생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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