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처음 만난 작가 김경욱의 다섯번째 소설집. 표제작 <위험한 독서>에 끌려서 읽게 된 작품인데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읽었을 때 느낀 2프로 부족함을 이번 단편집을 통해 조금은 채울 수 있었다. 평론가는 그를 두고 진화하는 소설 기계라고 표현했는데, 16년째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을 내놓는 김경욱에게 제법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인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독서치료사의 이야기에서부터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의 맥도날드 직원, <천년여왕>의 작가 지망생,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의 홈쇼핑 고객 상담원,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의 대리모, <황혼한 사춘기>의 수험생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독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라 낯설지 않으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사실 애초에 <위험한 독서>의 독서치료사가 권해줄 책들이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위험한 독서>에서 언급된 책들 외에도 다른 작품에서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을 많이 언급해줘서 보관함에 차곡차곡 읽을 책들을 쌓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중간중간 낯선 책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음에도 이 책은 젠체하지 않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기대했던 <위험한 독서>도 재미있었지만,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단편은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였다. 자신의 생활도, 가족도,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모두 맥도날드화되어버린 것을 풍자적으로 그린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우리의 X구'로 시작되는 괴 전단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잉크가 번져 제대로 보이는 글자가 몇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알바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저마다 칸을 채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상황도 꽤 코믹했다. 예를 들어, 'X경XXX 즉각 중단하라.'의 경우에는 '포경수술을 즉각 중단하라, 강경진압을 즉각 중단하라'로 변형되었고, '아XX의 X강을 XX지 XX.'의 경우에는 '아우들의 요강을 버리지 마라, 아시아의 최강을 넘보지 마라'로 바뀌는 장면은 한 편으로는 코믹했지만, 한 편으로는 소통의 단절을 느끼게 해줬다. (원래 내용은 알고보니 '환경파괴를 즉각 중단하라'와 '아동들의 건강을 해치지 마라'였다.) 

  그 외에 빚청산과 햇볕 잘 드는 전세방을 위해 물건을 팔듯 자신이 자궁을 판매하기로 한 아내와의 이야기를 다룬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와 무엇이든 빌릴 수 있는 사이트를 친구로부터 소개받는 주인공이 '휴식 같은 고독'을 대여하는 이야기인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에서는 고독과 너그러움, 그리고 자궁마저도 돈으로 구입하는 현대인의 물질 만능주의적 면모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현대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타인과 소통의 단절을 겪는 이들이라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며 읽어갈 수 있었다. 진화하는 소설기계답게 전작보다 훨씬 매끄럽고 안정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집. 나를 읽어봐라고 독자를 유혹하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유혹에 못이기는 척 넘어가 그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만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읽는다면 더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