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놀기 -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강미영 지음, 천혜정 사진 / 비아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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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를 곳에 도착해 있다. 돌아가기에도 너무 먼 곳까지 오고 나서야 내가 어딘가에 도착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니 중간에 발을 멈추고 '너 맞게 가고 있니'하고 물어줘야 한다. 일상이 진짜 일상으로만 느껴질 때, 내 삶이 고장 난 브레이크를 장착한 것처럼 멈춤 없이 흘러가기만 할 때, 그저 해가 뜨고 진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하루가 끝나갈 때, 우리에게는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분주한지, 내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방향키를 돌려야 할 지점은 어디인지, 체크해야 한다. -15쪽

시간이란 게 죽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월요일, 1일, 1월... 뚝뚝 끊어주면서 계획도 다시 세우고 점검도 해줘야 한다. 어느 날 새삼스럽게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다음 매듭에서도 또 그다음 매듭에서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언제고 마음이 닿는 날에는 카페에 앉아서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무엇이든 적어보자. 무엇이든. 한 달이 끝나가는 지점이라면 한 달 동안 내가 새로 배운 노래가 무엇인지, 몇 번이나 속상해서 울었는지, 가장 즐거웠던 만남은 누구와의 만남이었는지,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하늘과 나무를 몇 번이나 바라보았는지, 내가 새롭게 길들인 버릇은 무엇인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엇인지, 성공적으로 해낸 요리는 무엇인지, 한 달을 형용사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를 쓸 수 있을지 적어보는 것도 좋다. -16쪽

하루에도 표정이 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 하늘을 날아갈듯이 기쁜 날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일로 뚜껑 열리는 날이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모여 오늘의 표정을 결정한다. 혹은 어떤 사건 하나로 오늘의 표정이 결정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 <탐구생활>에 날씨를 그리듯이 오늘의 기분을 표정으로 표현해 그려놓으면서 혼자 웃었던 적도 있다.
요즘 내 하루에는 표정이 없다. 증명사진을 찍듯 무표정한 날들로 채워져 있다. 도저히 무슨 표정으로 나타내야 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일도 없이, 새로운 일도 없이, 그렇다고 슬프거나 힘든 일도 없이... 기억할 만한 일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내 일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슬픈 하루보다 더 힘 빠지는 것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날이다. 이런 날들의 반복은 나를 무기력의 세계로 이끈다. 모든 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아무런 의미 없이 회전하는 쳇바퀴, 나의 하루가 그것과 닮아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탈출해야 한다. -24쪽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단순해질 수 있는지, 삶에서 지켜야 한다고 나를 옭아매던 규칙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알 수 있다. -31쪽

선택은 자유이다. 때를 놓친 일을 하지 않고 평생 둘 것인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한번 시기를 놓쳤다면 다시는 그 일을 하기에 적절한 때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늦을수록 서두르는 쪽을 택했다. 무슨 일을 하는데 얼굴의 주름살이나 뱃살 따위가 결정권을 갖게 둘 수는 없지 않는가. 나이에게 지지 말자! -39쪽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내 가능성과 능력의 범위를 점점 줄여간 채. 내가 무기력해지기 시작한 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정하면서부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점점 나약해졌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한번씩은 해봐야겠다. 내가 정확히 못한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할 때까지. 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59쪽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마음 자세를 의미한다. 가방을 둘러매고 훌쩍 떠나지 않아도, 나만을 위한 시간이나 공간이 정해지지 않아도 언제든 혼자 놀 수 있다. 그러니까 혼자놀기는, '시간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뭐'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일이 바쁜 젊은 아가씨도, 한 살배기 아들을 둔 가정적인 아저씨도 얼마든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64쪽

혼자놀기란 100미터 달리기처럼 출발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침에 거울 보는 시간, 선풍기 타이머를 돌리는 시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르는 시간, 화장실에 가는 시간, 이미 오늘 하루 속에도 혼자인 시간은 있고, 그 시간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어진다.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아무것도 아닌 이 시간들을 내 편으로 만듦으로써 혼자놀기는 시작된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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