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은 들어봤지만 대한민국 원주민은 낯설었기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궁금증을 갖고 책을 잡았는데 의외로 금방 궁금증은 풀렸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전통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느닷없이 닥쳐온 파도에 밀려 끝없이 떠돌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마치 물 마른 강바닥에서 소용도 없는 아가미를 꿈벅대는 물고기처럼 미처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나는 그들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이름 붙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의 가족들이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쓰여진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구수한 경상방언의 말맛과 함께 사람냄새 풍기는 이야기를 읽어갔다. 책을 읽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정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격한 현대화를 경험한 한국인이지만 그런 급격한 흐름을 타지 못한 채 옛 방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만약 이런 책이 없다면 어쩌면 다음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는 그저 왠지 꾸며낸 것 같은 이미지로 남지 않을까 싶었다. 장남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장녀의 이야기라던지, 고기를 떼다가 골짝골짝 이고 다니며 파는 모습이라던지, 나이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종이기때문에 당연히 하대받는 아랫말 사람들의 이야기 등은 왠지 할머니가 들려줄 법한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문득 엄마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궁금해져 옛 이야기라도 들을 요량으로 몇 꼭지 읽어드렸더니 깔깔 웃으시면서 옛 생각이 난다고 하시더라. 따지고보면 나도 어렸을 때부터 그리 풍요로운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대한민국 원주민들이 겪은 가난은 내가 겪은 가난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나름 즐거운 일들도 있었고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된 점은 같겠지만 그들의 가난은 좀 더 본질적인 욕구와 맞닿아있는 느낌이랄까. 뭐 어쨌거나 굳이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라도 남녀노소 누가 읽어도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최규석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 소문대로 굉장한듯. 달리 매니아층이 형성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